예수께서는 올해도 거듭 태어나셨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께서 무덤에 묻혀 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진짜 크리스찬이라면 믿고 있지 않는 이는 없다. 비단 그것은 예수께서만 그렇게 되신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그렇게 된다는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요, 요체인 것이다. 거기에는 부활이 물론 중심이 되는 것이지만, 죽음 또한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죽지 않고서는 부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활을 죽음에다 연결시키는 신학적인 차원의 심오한 진리는 나 같은 사람이 감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차치하고, 지금 우리가 피부로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볼까 한다.
가위 죽음과도 같은 엄청난 괴로움에다 견줄 수 있을 만한 길고도 긴 세월동안의 어두운 터널 속을 헤어나, 우리는 이른바 ‘문민 정부시대’라는 것을 맞게 되었다. 그것이 이제 기껏 2개월째 밖에 되지는 않지만, 그 짧은 기간에 무엇인가 분명히 달라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아직은 한마디로 딱 잘라서 단정을 짓기는 어려우나, 아무튼 우리의 기분만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 가지 유쾌하지 못한 것은 별로 반성할 줄 모르는 것 같은 기득권층의 태도다. 그들이 반성은 고사하고 도리어 불평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대하게 될 때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 국민의 절대다수가 자기 소유의 집들이 없어서 전세가 아니면 사글세 집에 살고 있는 신세인데, 그들은 무슨 특권이라도 있기에 가족들마다의 이름으로 몇 채씩의 집을 가지고 있나하면, 아무리 부지런히 일하고 또 일해도 단돈 1억도 모으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인데, 줄이고 또 줄여도 수백억의 엄청난 재산을 가진 공직자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며, 수십억 같은 것은 거의가 다 가졌다.
그것도 주로 부동산만 그렇다 하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동산이 또 얼마나 될지 상상을 불허한다.
보나 마나 정확한 정보에 따라 부동산 투기를 했거나, 무시할 수 없는 직권 때문에 절로 굴러들어 온 검은 재물이었을 것이며, 혹은 직위를 이용하여 슬쩍슬쩍 긁어 들였을 재산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심증을 굳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하여 우리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우리 신자들까지도 없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두어차례 했거나 얼마동안 요직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거의 한결같이 살판난 졸부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다. 이 시대가 썩을 대로 다 썩어버린 말세가 되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좀 났다 싶은 사람들 치고 구린내를 풍기지 않는 이라고는 없는 것 같았다. 자기네 딴은 한가락 한다는 그들뿐이 아니었다. 겉으로 퍽 열심해 보이는 여느 신자들까지도 일일이 다 캐고 보면 그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올해의 부활절은 아주 뜻이 있는 부활절인 것 같다. 무엇보다 우선 공직자들의 재산공개 문제 한 가지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의 모든 가진 이들이 자기보다 못 가진 이들에 대하여, 그리고 더 많이 가진 이들이 덜 가진 이들에 대하여 한번이라도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어찌 그것이 단순히 부끄러움만으로 끝나고 말 일인가. 그런데도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 가진 것이 마치 자기네들의 특권인 줄 알거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안다면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며, 엄청난 오해다.
단언하거니와 이제까지 떵떵거리면서 신나게 잘 살아온 사람이면 앞으로는 죽은 듯이 지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화려한 삶이 있었으면 죽음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삶도 있게 마련이라는 원리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다 죽어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육체적인 생명만을 이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죽은 듯이 살아온 이들은 지금부터 활개를 쭉 펴고 참으로 사는 것 같이 살 때가 온 것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죄를 지어가며 살아서는 안 된다. 언제나 죽음으로부터 거듭 태어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야 한다. 다만 우리의 그리도 좁았던 길이 조금 넓어졌다는 것 밖에는 없다. 죽음은 곧 거듭 태어나기의 통로인 것이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김경룡씨 주강씨 박옥걸씨 박일영씨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이재기씨(경남매일 교열부장)김정길씨(대구 매일신문 사업부국장) 배문한 신부(수원 가톨릭대 학장) 고흥길씨(중앙일보 편집국장)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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