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부담도 생기게 되었고 신부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성당에 가지 않은 처음 며칠 동안은 그저 심심하기만 하였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심심한 것만이 아니라 성당에 가고 싶어지고 신부님도 보고 싶어졌다. 더 시간이 지나면서는 나도 세례를 받아 신부님께 그 하얀떡을 받아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할수록 더욱 더 간절히 바라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마음의 안정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 보기로 작정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고 맞아 죽더라도 속 시원히 이야기나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부모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적극적으로 찬성하시는 것도 아니셨지만 절대적인 반대도 아니셨다.
나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어 두려움 없이 마음에 있는 생각들을 모두 말씀드렸고 부모님의 허락을 받게 되었다. 그길로 나는 신부님을 찾아갔다. 세례를 받게 해달라고 조르기 위해….
77년 12월25일 나는 세례를 받았다. 솔직히는 세례가 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난 세례를 받고 더 열심히 성당을 다니게 되었고 신부님과 친하게 지냈다. 우리 방 신부님은 늘 바쁘셨다.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신부님께서 하시는 일 중에서 중요한 일이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 첫째가 장학사업이고 두 번째가 의료봉사였고 다음이 선교사업이었다.
신부님의 고국은 스페인이다. 신부님은 고국의 여러 친구와 친척들에게 한국의 어려운 학생들에 대해 알려주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성당에 다니는 학생들이나 근처의 불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계셨다. 그 숫자는 의외로 많았고 시작 하신지도 오래 되신 것 같아 보였다. 신부님의 장학금으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도 있었으니까. 두 번째는 의료봉사였는데 이 역시 고국의 은인들로부터 약품과 의료장비를 지원받아 성당의 의사신자와 같이 산골의 여러 마을을 다니시면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약을 주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교사업은 산골의 작은 마을을 다니면서 성당에 대해 신부라는 사람에 대해 하느님에 대해 설명해주고 여러 가지 책과 홍보물을 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신부님과 가까워지면서 의료봉사 사업과 전교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신부님과 의사선생님이 진료를 가실 때 같이 따라가서 여러 가지 잔심부름도 하고 접수증도 쓰고, 진료를 하시는데 불편함이 없게 해드리는 것이었는데, 횟수가 거듭될수록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체온계도 볼 수 있게 되었고, 처방전을 보고 약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나는 진료팀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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