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무심코 TV채널을 돌리자 마침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가 진행 중이었다. 그날은 ‘노인의 그늘’이라는 제목으로 현대판 고려장 얘기가 방영되고 있었다. 자식이 제주도 관광길에 늙은 부모를 유기했다든가 자손들이 이민 생활 중에 부모만 남겨둔 채 몰래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는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1993년 3월15일, 그날 아침 어머니는 나의 부축을 받아 목욕탕에도 다녀오셨고 성모님이 내려 보시는 가운데 점심까지 곱게 드셨다. 그리곤 오후에 마치 주무시는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 주무시는 모습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삼우제를 지내고 나니 그날이 마침 성요셉 축일, 또 이날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본명축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이 자식에게는 슬픈 일이나 어머니 당신에게는 축복이 아니었나 싶다.
생각할수록 이번 어머니의 죽음은 이것저것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TV에서 보여준 자식들의 패륜행위와 ‘상분감고도’ 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들려준 며칠 후의 어머니가 운명하셨으니 기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제 와서 어찌하랴 어머니는 이미 내 곁을 떠나 다시는 올 수 없는 나라로 가셨으니 애통해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머니가 어느 봄날 따스한 햇볕을 받으시며 고운 모습으로 찍은 그 사진을 영정으로 대신하게 되었으니 이 불효를 어찌 숨기며 살겠는가.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꾸짖어 주십시오. 이제 와 생각하니 어머님의 품이 왜 또 그리도 따스했던지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어머니 편히 잠드소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