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아침신문을 많이 받아본 적도 아마 없을 것이다. 현관문 열기가 무섭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각종 조간신문들은 물론 공짜로 얻는 것이다. 신문이란 게 독자들과 이상한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한번 독자는 영원한 독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이 땅의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공감을 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신청도 하지 않은 신문의 구독료를 낼 리가 만무하건만 신문사들의 투자는 막무가내다.
언젠가는 필경 나타나겠지만, 그래서 신문 구독료를 주제로 신문배달 소년과 작은 소동들을 벌이겠지만, 도대체 신문배달 소년은 만날 길이 없다. 어떤 이는 새벽에 버티고 있다가 잡기도 한다지만 아침잠이 많은 사람들은 그것조차 힘든 노릇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굵직한 사건들로 지면이 채워져 있을 때는 나중에야 삼수갑산을 가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신문을 비교해가며 보는 즐거움은 남다른 것이다. 구독료 실랑이를 감수하더라도 터지는 사건의 무게가 무게이니만큼 여러 가지 신문을 보는 일은 참으로 신이 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사안의 심각성이나 문제성을 놓고 본다면 신날 일도 아니고 즐거울 일도 아니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까지, 어느 분야까지 썩고 곪았는지 가늠조차 어려운 판국이기 때문이다. 줄줄이 사탕처럼 묻어나오는 온갖 비리의 현상을 통해 우리는 어두운 우리의 현재를 가늠하며 신음할 수밖에 없다. 정말 우리 민족이 이렇게까지 독하고 지저분한 사람들이었는가.
이젠 무엇이 터질 것인가 두렵지도 않다.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해도 놀랄 일도 없다. 정치, 교육, 경제, 군대… 속속들이 썩어버린 우리의 실체, 다음의 신문지면은 누구에 의해 어떤 얼굴들로 채워질 것인지 오히려 기대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이 와중에서 걱정되는 분야도 있을 것이다. 언론역시 그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면서 개혁바람에 풀무질을 한 언론이지만 잠깐 생각해보면 언론 역시 무거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날의 반성으로 치자면 언론이야말로 할 말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개혁의 흐름으로 볼 때 지난날 우리 언론의 위상은 바로 개혁의 대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게 의식 있는 사람들의 얘기다.
개혁이란 반성을 토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성이 없는 개혁은 또 다른 불의를 내재시키는 우를 범하게 할지도 모른다. 개혁에 앞장서고 있는 언론의 필봉이 보다 힘을 발하기 위해선 언론 스스로 대국민 ‘사과’와 ‘반성’의 자세를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필봉을 휘두르고 있는 모든 언론의 ‘필수과목’인지도 모른다.
반성과 사과는 과거시대를 살아남은 모든 이들이 함께 져야하는 짐일 수도 있다. 각각의 이유와 변명은 있겠지만 과거를 함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죄인 아닌 죄인으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단죄 받고 있는 오늘, 우리의 자화상은 죄인으로써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숙연히 되돌아보게 하고 있지 않은가.
언론은 언론이기에 그 짐은 그 어떤 대상, 어떤 부류보다도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언론이 갖고 있는, 공인된 책임성과 막중함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진실을 알리고 정의를 말해야 하는 언론이 어떤 이유에서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면 국민을 향한 사죄와 반성은 마땅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더라도 오늘, 개혁이라는 이름에 날개를 달아준 장본인은 바로 언론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문에서 방송에 이르기까지 언론은 현 정부의 개혁의지에 자연스럽게 홍보역을 담당했다. 국민적지지 속에 개혁을 역행할 수도 있는 작은 걸림돌들을 배제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언론의 힘이었다. 지금처럼 언론이 활개를 펴고 제 역할을 신나게 담당했던 때가 아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개혁을 다시없는 기회로 보고 있다. 언론 역시 그 사실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 같은 사실 때문에 언론은 사실상 개혁을 주도하는 실세의 역할을 맡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곧 언론의 자발적 자정노력을 촉구할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언론 역시 개혁의 칼자루를 쥔 대열에 속하기 때문이다. 깨끗한 손만이 제대로, 완벽하게 개혁의 칼날을 휘두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3공에서 6공에 이르기까지 매번 등장하는 새 정부와 공생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언론, 공안당국의 언론정화 칼날에 한술 더 떠 문제인사를 배제시켜온 언론, 앉아서 받는 광고로 기업형 몸체를 키워온 언론, 그래서 샐러리맨들의 봉급체계를 완전히 교란시켜버린 부자 언론 등등. 반성과 속죄의 마음으로 과거와의 끈을 단절시키지 않는 한 언론의 개혁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언론의 개혁 없이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물론 어려운 일이고.
이 같은 전제조건들이 갖추어진다면 우리의 언론은 내용으로 세계 제1위 언론을 꿈꾸어야만 할 것이다. 과다 경쟁으로 제 살을 깎아먹거나 내용 없는 부피로 승부를 거는 일도 버려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언론이 사는 길이고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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