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의사선생님이 병원을 운영하고 계시는 터라 무의촌 진료는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오후에만 다니므로 학생이었던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진료팀과 같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이 전교사업인데 신부님 보다는 나의 한국어 실력이 더 뛰어났고 노래나 율동도 신부님 보다는 내가 더 나았으므로 신부님 역시 나와 같이 다니시는 걸 좋아하셨다.
마을에 도착하면 신부님은 마을 어른들과 사랑방에서 말씀을 하시고 나는 어린이들과 마당이나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노래도 하고 그들에게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나는 이 두 가지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었고 신부님께 죄송한 마음도 생기게 되었다. 이 많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약을 주고 치료를 해 주는 것이 우리 한국 사람이 아니고 외국 신부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신부님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은 깊어갔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나는 의사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그분이 근무하시는 병원에 자주 들리게 되었다. 신부님의 심부름으로 무슨 약을 가져다 드리기도 하고 진료 처방전을 가져다 드리기도 하고…. 사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병원이라는 곳엘 많이 가보지 못했었다. 학교로 예방접종을 하기 위하여 오는 간호사들만 보았었고 언제인가 보리 베기 나갔다가 실수로 손가락을 베어 선생님 등에 업혀 보건소에 가본일 밖에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병원이라는 곳이 낯설었고 낯선 만큼 호기심이나 궁금한 것이 많았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는 섬찟 놀라기도 하였는데 그러한 놀람도 없어졌고 그 지독한 소독약 냄새도 차츰 코에 익숙해졌다. 그러다보니 의사선생님과도 친해졌고 병원의 여러 식구들과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병원의 의사선생님 보다는 간호사들이 더 좋아 보였다. 아픈 사람들에게 주사를 놓고 상처를 치료해 주고…. 환자들 역시 의사선생님 보다는 간호사들과 더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아 보여서, 그래서 무료진료를 다니게 되면 내가 간호사가 되어 환자들에게 약을 주고 치료를 해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하였다. 그러면서 차츰 알게 된 일인데, 내가 간호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나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내 주위에서 남자 간호사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남자도 간호사가 될 수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간호사에 대해 남자 간호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였다. 대구에 있는 큰병원과 대학에 편지를 띄웠다. 얼마 후 학교에서 답장이 왔는데 그 학교에서는 남자를 신입생으로 받지 않지만 다른 몇 학교에서는 남자를 신입생으로 받는다고 하였고 그 학교의 주소들을 적어 보내왔다. 병원에서도 답장이 왔는데 지금 우리나라에도 몇 명의 남자 간호사들이 일하고 있는데 특수한 부서에서 활동이 활발하다고 알려졌다. 나는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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