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자기 집안의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한 노인 신자가 있다. 거의 날마다 찾아와 이런 저런 자료를 묻거나 찾아 나름대로 집안 내력을 글로 꾸며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자기 집안은 충청도 어느 지역 태생인데 군난 때 피해 다니느라 증조부·고조부 대를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군난 이후에도 어렵게 생활하면서 이곳저곳 교우촌을 전전하였으니, 선대의 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당대의 가계도 추스르기 어려웠으리라. 그런데 이제 형편이 나아지자 아드님과 함께 집안의 내력을 있는대로 조사하여 글로 남기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분이 찾아올 때마다 “이런 자료 없습니까”하고 물으면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집안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군난 때 고조부님이 순교하셨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진솔함에서 진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근거 자료가 나타나지 않으니 안타깝기만 했다. 하긴「병인년 충청도 보릿고개 살던 신자들이 함께 포졸에게 잡혀가 일부는 순교하고 일부는 석방되었다」고 하는 식의 기록이 많으니, 어느 집안의 조상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겠는가?
그분은 오랫동안 노력한 끝에 대략의 윤곽을 잡게 되었다. 자기 성씨 족보, 조부님이 손수 만드신 가계보 등을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교회 자료들을 통해….
그 후 얼마동안 그분의 발길은 뜸하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두툼한 뭉치를 들고서 기쁜 마음으로 다시 찾아왔다. 그 뭉치 안에는 그동안 함께 찾아본 온갖 자료들과 자신이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자료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어렴풋이 들어왔던 선대들의 고향 내력도 들어 있었다.
그 자료들을 이리저리 해석해 보니, 제법 그럴듯하게 되었다. 비록 증조부·고조부님대의 가계도는 정확히 작성할 수 없었지만, 그분의 평소에 찾던 집안 내력은 어느 정도 꼴을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다던 ‘순교자 집안’이란 사실도 거의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뒤에는 아드님이 다시 찾아와 아버님의 소원을 풀어드려 기쁘다는 말을 하고 갔다. 아마도 그분은 지금 그 내용들을 글로 엮고 계실 것이다. 그분의 후대들이 “이런 자료 없습니까?”라고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