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류는 사회적·경제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특히 거듭 1백여 년 사이에는 그 전 수천 년간 쌓아온 변화에 필적할 만큼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문화적, 물리적 풍요가 더 할수록 잃어버린 것이 많으니 그 중 하나가 바로 인간성(휴머니즘)의 상실이다. 그것은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 깊고 더 넓은 바다가 되어 온 인류를 빠뜨려 허우적대게 할 것이다.
돌아보면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 민족, 우리 사회는 이렇게 낯설지 않았었다. 부모자식 간에는 정이 깊었고 사제지간에는 존경과 흠숭이 있었다. 형제자매 사이에는 우애가 무엇보다 앞섰으며, 이웃 간에는 콩 한 쪽, 곡식 한 알도 나누어 먹었고 기쁨은 온 집안, 온 마을로 함께 누렸고, 슬픔은 서로서로 쉬쉬하며 가슴에 묻어 삭였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으나 박애를 행했고 석가를 배우지 않고도 자비를 실천했다. 마르크스, 레닌을 받들지 않아도 공동체적인 삶을 함께 했으며 그것의 시작과 끝이 바로 홍익인간임을 깨우치고 있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사랑을 베풀고 그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곡식산을 털어서 굶주리는 아프리카인에게 나누어 주면 존귀한 인간의 생명을 굶어죽게 하는 비극은 없을 것이다.
가 보았는가. 높은 분들이 계시는 낮은 곳으로, 수고한 음식이 썩어가고 있지만 나누어 주는 손이 없다. 옆에 층층이 재워 두었지만 입힐 손이 없어서 추위에 떨고 있다. 당신은 손이 없는가. 못에 박힌 손은 못 될지 언정 함께 손뼉치고 같이 기뻐하고 더불어 나누는 손이야 누구나 될 수 있지 않는가.
우리 모두 지금 손에서 쥐고 있는 것을 당장 놓자. 화투를 치고 있는 젊은이여 일본인들의 비아냥거림이 들리지 않는가. 당구를 치고 있는, 내기바둑을 두고 있는, 빠찡고를 하고 있는, 술을 마시고 있는, 세상의 모든 비생산적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이여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손을 맞잡자. 그리고 생각하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최선의 것인가를. 내 삶에 꼭 필요한 것인가를.
여태껏 우리는 해야지, 해봐야지 하며 미루어 왔다.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에 해도 괜찮다는 변명으로,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미루어야 할 이유도 또 미룰 여유도 없다. 우리 모두 따스한 손을 내밀어서 밀어주자. 그럼으로써 나눔이 바로 얻음이요, 베풂이 도리어 받는 것임을 깨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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