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짜증나….”
내가 강의를 시작한지 1분 뒤에 J가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도 나름 숙고하고 조심하며 준비를 해왔는데…. 성매매업에서 탈출하려는 여성들을 돕는 ‘막달레나의 집’ 자매들을 위한 피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연이어 J가 소리를 질렀어요. “빨리 좀 끝내요.”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이들(비신자)과 동반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미처 몰랐습니다. 피정을 안내하러 가서 내 자신이 그토록 절박하게 기도를 해 본 적이 또 없었지만, 투박해 보이던 자매들과 마음을 열고 함께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눈물로 나누는 가운데 평생 잊지 못할 ‘은총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막달레나의 집’은 1985년부터 평신도 이옥정 선생님과 메리놀회 문애현 수녀님, 서유석 신부님께서 서울 용산역 집창촌에서 고생하는 직업여성들이 폭력과 억압에서 벗어나도록 돌보며 자립하도록 지원해 온 쉼터였습니다. 수많은 은인들의 지원이 있었는데, 특별히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께선 자주 방문하셨을 뿐 아니라 이곳 자매들에게 담뱃불도 붙여주시고 ‘왜 그런 일을 하느냐? 이제 그만해라’ 같은 도덕적 훈화는 단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으셨답니다. 또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자매들을 위해서 직접 찾아와 장례미사를 드려주기까지 하셨답니다. 한 인간을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해주신 그분의 마음이 스며있습니다.
막달레나 성녀는 교회전승(그레고리오 1세 교황)에 의하면, 창녀 혹은 ‘일곱 마귀 들린 여인’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성녀의 기념일을 축일로 선포하며 ‘제자들 중의 으뜸가는 제자’였음을 인정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교회의 반석으로서 으뜸이시지요. 하지만 막달레나 성녀는 남성중심 가부장제 사회에서 열두 사도에는 속하지 않았어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데는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남자 제자들이 모두 도망친 상황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끝까지 지키고, 동이 트기 전 캄캄하고 무서운 밤,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모실 열망으로 무덤가에 찾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신 용맹한 분, 막달레나 성녀는 우둔하고 두려움에 빠져 있던 남자 사도들에게 예수님 부활의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주었습니다.
남자들이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과 권한은 힘과 지식, 덕망을 갖춘 남자들이 전유하고, 여성들은 보조 직무자로만 인식되기가 쉽지요. 하지만 여성의 자리와 역할을 액세서리 정도,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으로 인식하는 가부장제 사회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기실 어린아이의 건강한 성장에 필요한 것은 엄마의 젖가슴과 따뜻한 사랑이듯이, 세상살이에 지쳐 고통 받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 줄 수 있는 ‘신적 모성애’입니다! 그러기에 마음 열린 성직자들, 특히 영적으로 건강하고 모성애 가득한 수녀님들과 평신도들 덕에 우리 교회가 성령님께 감화되어 ‘복음의 기쁨’을 세상에 증거해 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강조하시는 ‘야전병원’으로서 교회이지요.
‘막달레나의 집’은 한국 천주교회의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교회가 세상 한복판에서 가장 상처받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여성의 자리에서, 여성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인권을 지지하며, ‘모든 이가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선포한 ‘빛과 소금’의 자리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난해 문을 닫았지만, ‘막달레나 공동체’는 보다 절박한 여성들을 돌보고 지원하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운영 중이랍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외형은 더 커졌지만 교회 문과 담벼락이 더 높아지는 것 같아 적잖이 염려됩니다. 교회가 교회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세상에 짠맛을 나누지 못하는 녹지 않는 소금처럼 될 것입니다. 우리 성교회 안에서 ‘막달레나 공동체’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증거하는 ‘빛과 소금’의 자리가 더 커지기를 기도드립니다.
“내가 진실로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자매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오세일 신부 (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