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지금 돌이켜도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뭐라고? 모기들이 모여서 반대 데모한다고? 아유, 귀여운 모기들, 낄낄낄! 그래도 우리는 에프킬라 사야겠지?
고위공직자수사처 만드는데 일부 의원들이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던진 조크입니다. ‘당신은 개혁에 반대하는 적폐세력이야.’ 이렇게 대놓고 비난하는 것보단 한결 분위기가 부드럽습니다. ‘적폐세력’이란 말은 자칫 상대방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걸로 들립니다. 그래서 직접적인 공격을 피해 슬쩍 돌립니다. ‘너 모기 되지 않으려면 잘 해! 난 에프킬라 살 거니까.’
넉넉한 유머의 노회찬 의원이 7월 23일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정치자금 받고 신고만 했으면 됐을 일로 아까운 이가 죽다니….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서는 국회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길게 늘어서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가 데모하는 모기들에 빗댔던 공수처 반대 의원들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마 노 의원이 ‘당신들은 적폐세력이야’하고 다그쳤다면 그분들은 노 의원을 평생 원수 삼고 지냈겠지요. 그래서 예수님도 늘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 걸까요?
그가 그렇게 가고 나자 온 나라 사람들이 애도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만약 노 의원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지금쯤 매일 특검에 불려 다니며 ‘너, 정치자금 받고 왜 신고 안 했어? 그 돈은 무슨 청탁 대가로 받은 거지?’ 엄청난 고초를 겪고 있었을 거고, 여론은 또 연일 비난과 단죄를 계속했을 겁니다. ‘혼자 정의의 사도인 척 하더니, 혼자 깨끗한 척 하더니 뒷구멍으로 뇌물이나 받아먹고 있었구나, 이 위선자야.’ 아마 이런 댓글들이 도배를 했을 겁니다. 결국 노 의원은 갖은 수모를 겪은 뒤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그는 이런 세태를 미리 내다보고 선택의 시기를 앞당긴 것일 뿐, 그의 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 걱정스럽습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다 맹목적 미움의 포로가 돼 버렸습니다.
검찰에서 수사를 받다가 자살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이들이 수사과정에서 무슨 고문이나 학대를 받아 그렇게 됐다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언론과 여론이 쏟아내는 일방적이고 인격살인적인 비난을 못 견뎌서 그런 걸로 보여집니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남성 중심적 사고와 체제를 바꾸자는 ‘미투’ 운동이 거꾸로 남성을 원수 삼고 여성 중심적 사회를 만들자는 게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일부 여성들이 안중근 의사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모욕을 하고, 대통령 보고 자살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교회의 낙태반대운동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며 성체를 훼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 나아가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일부 사람들이 자신은 억울하다고 재판을 통해 진실을 가려달라고 하자, 이는 2차 가해라고 비난합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재판은 어느 일방에 억울함이 없도록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헌법이 보장한 마지막 장치입니다. 그런데 이런 재판에의 호소를 가지고 2차 가해라 주장한다면 이제껏 남성이 여성에게 가해 왔던 일방적 윽박지름을 고스란히 자신들도 반복하는 일에 다름 아닐 겁니다.
과거 ‘남성 기득권의 사회질서 유지나 안보’를 이유로도, 지금 민주화 시대 ‘여권신장이나 약자보호’를 이유로도, 그 어떤 명분으로도, 개개인을 부당하게 대우하거나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길을 막아서는 안 되는 게 바로 민주주의의 꿈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잘못도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부인당할 만큼 무거운 잘못은 없겠지요. 그리고 이 세상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로 다른 사람을 단죄하고 비난할 권리는 없겠지요.
미워하지 않고 잘못을 바로잡는 일. 참으로 어려운, 그래도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데모하는 모기’로 우리를 웃긴 노회찬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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