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나는 신부님께 이 모든 사실을 말씀 드렸더니 신부님은 무척이나 좋아하셨고 나에게 큰 용기와 격려를 주셨다. 나는 신부님과 같이 부모님을 뵈러갔다. 나 혼자 부모님께 간호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씀을 드릴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신부님은 약속대로 부모님을 만나셨고 내가 간호사가 되고 싶어 한다고 뜻을 전해 주셨고 그 직업에 대한 장래성과 외국에서 여러 가지 보신 것들을 이야기 해주셨다.
이렇게 나는 신부님의 도움으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간호대학에 진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기 전날, 신부님과 나는 간단한 파티를 하였다. 여러 가지 활동을 같이 하면서 신부님과는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할 이야기도 서로 많았다.
헤어질 무렵 신부님은 “도미니코, 나는 지금까지 이곳 시골에 와서 많은 학생들에게 어떠한 대가나 기대를 가지고 도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 학생들은 은인들이나 나에게 편지조차 써주지 않았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고마움의 표시라든지 자기 자신들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와 은인들은 많이 섭섭했으며, 그로 인하여 학생들을 돕겠다는 은인들의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장학사업을 그만 두려고 합니다. 그런데 도미니코가 간호사가 되기 위하여 간호대학에 가니까 나는 도미니코를 이 장학사업의 마지막 장학생으로 삼겠습니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하셔서 꼭 훌륭한 간호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나는 본의 아니게 신부님 장학사업의 마지막 학생이 되었고 신부님은 나에게 등록금과 약간의 용돈과 스페인 은인의 사진과 주소를 주셨다.
이렇게 뜻밖에 장학생이 된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를 도와주시는 은인과 신부님을 위해서 그리고 나는 신부님의 마지막 말씀을 잊을 수가 없어 신부님과 은인에게 자주 편지를 드렸다. 여러 가지 내 주위의 작은 일들과 학교생활 등을 알려 드렸고 성적표도 보내 드리곤 하였다. 그랬더니 스페인의 은인은 무척이나 좋아 하셨고 나를 위해 여러 가지 학용품과 책들을 신부님을 통해 전해 주셨다.
나는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주말이면 신부님과 같이 의료봉사 활동을 하였고 방학 때는 사제관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도와 드렸다. 내가 마지막이라 하시던 장학사업도 계속 되었고 나는 그 장학사업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학금을 지급받는 학생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서로의 처지도 이야기하고 각자의 은인들에게 편지도 쓰고 신부님과의 정기적인 만남도 가졌다. 학생은 20명이 넘었고 대학생도 3명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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