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적으로 싱그럽기 이를 데 없는 5월이다.
올해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법의 날’과 ‘노동절’(1일)을 비롯하여 ‘어린이 날’(5일) ‘어버이 날’(8일) ‘스승의 날’(15일) ‘성년의 날’(17일)들이 줄지어 있는가 하면, 5일이 ‘입하’ 21일이 ‘소만’ 25일이 ‘권농일’인데다, 이와 같은 대소사들로 꽉 짜여 있는 이 5월을 ‘가정의 달’이니 ‘청소년의 달’이니 ‘계절의 여왕’이니 ‘신록의 계절’이니 하여 사람들은 시(10)월 못지않게 여간 좋아하지 않고들 있다.
그러나 절기상으로는 아무리「입하」가 끼어 있긴 해도 벌써 뜨거운 여름이라고는 할 수가 없고, 올핸 비록 며칠 전까지 쌀쌀한 느낌이 들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아직 겨울이 밍기적거리고 있는 건 아니다. 근래엔 곧잘 중간 계절 같은 건 거치지도 않고 여름에서 바로 겨울로, 겨울에서 금방 여름으로 바뀌긴 하나, 지금은 설사 벽창호같은 사람이 무턱대고 우겨대더라도 계절적으로는 봄임엔 틀림없다. 그야말로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주 알맞은 호시절이요, 녹음방초의 썩 좋은 시기다.
종교적으로 볼 때는 불교인들의 최대 명절인 ‘석가탄일’이 28일 이어서 전국의 사찰마다에서 불세자들의 견불 행사가 꽤나 요란스러울 게 뻔한 때다. 이 세상 권력도 부귀도 영화도 헌 신짝처럼 다 팽개쳐 버리고 오로지 번뇌에서 해탈하려 하였던 석가의 거룩한 고행도 사바세계의 중생으로부터는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긴 하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여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던 예수께서 영광스럽게 승천하신 것을 기념하는 ‘예수승천 대축일’이 23일이요, 하늘에 오르신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내려 보내신 날인 ‘성령강림 대축일’이 바로 30일이다. 거기에다 또한 우리 교회에서는 이 달을 ‘성모성월’로 정해 놓고, 인류구원에 있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큰 협조자요, 중개자인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우리로 하여금 특별히 하느님께 간청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실로 요상스러운 게 많다. 우리나라가 광복되고 나서 1948년에 초대 국회의원을 뽑았던 날이 5월(10일)이었고, 2대(30일)가 1950년 5월이었으며, 3대(20일)가 1954년 5월이었고, 4대(2일)가 1958년 5월이었으며, 8대(25일)가 1971년 5월이었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선거도 3대(15일)때가 1956년 5월이었고, 6대(3일) 때가 1967년 5월이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민주주의와 가장 깊은 관계가 있는 총선과 대선들이 5월에 치러졌다는 역사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건만, 그 반면에 매우 영예롭지 못한 기록도 주로 5월에 있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1961년에 있었던 5·16 군사 쿠데타야말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뽑아 버린 역사의 악순환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었다. 그것이 어디 거기서 끝나 버렸던가. 저 몸서리치는 5·18의 광주사태까지 몰고 오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역사를 30여 년이나 뒤로 돌려놓는 엄청난 오류를 저지르지 않았는가. 그래 놓고도 잘했다고 억변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역사의 심판을 받아 마땅할 자들일 것이다.
그러한 5월도 올해는 이제 그럭저럭 중턱에 이르러있다. 필자의 이 글이 우리 가톨릭신문에 게재되는 날이 하필이면 또 공교롭게도 5월 16일, 바로 5·16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던 날로서, 그것도 33돌을 맞게 되는 날이라니 좀 어이가 없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지난 날 광복을 맞았던 이 나라에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한 뜻깊은 달인 5월이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과 성년의 날이 있는 아주 자랑스러운 달인 5월이며, 석가의 탄신일이 있는가 하면, 예수승천 대축일과 성령강림 대축일이 있는 성스러운 달인데다, 성모성월이요 가정의 달이며 청소년의 달이요 신록의 계절이며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올해 따라 왜 즐겁지가 못하고 우울한 생각이 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필자의 마음이 그래서일까, 이번 어린이날은 어쩐지 어린이들도 마냥 즐거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어버이 날이라고 해서 늙으신 부모님들이나 젊은 자녀들이나 어린 손자 손녀들의 얼굴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굳이 그 이유를 알고 싶지는 않은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눈을 하나 뽑아 버리고 손을 하나 잘라내고 몸뚱이를 반쯤이라도 서슴없이 도려낼 각오만 단단히 되어 있다면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겠다는 독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생명이 되살아나는 이 계절에 우리는 성령께 간구 드리면 될 것이다. 성령께서는 결코 그렇게 못하실 리가 없다. 다만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의지하자. 오직 그것 밖에 우리에게는 살 길이 없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