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이면서도 무척이나 바빴다. 공부도 열심히 하여야 했고 의료봉사 활동도 하여야 했으며 장학생 모임의 책임자가 되어 그 모임을 이끌어 가야 하기도 했으니까. 내가 대학 2학년이 되었을 때 방 신부님은 교구의 다른 성당으로 사목 현장을 옮기시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자연히 나와는 만나는 시간과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장학금이 지급되었고 가끔씩 찾아오셔서 격려도 해주셨다. 나는 신부님과 같이하던 의료활동을 의사선생님과 계속 하였다. 신부님이 계실 때 보다는 횟수도 줄었고 약품도 줄었지만 그만 두지는 못하였다. 산골에서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을 외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신부님은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옮기시고도 계속 그러한 활동을 하시고 계셨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 3학년이 되었고 많은 실습과 국가고시를 준비하여야 하는 시기여서 옛날처럼의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니 시골에 갈 기회나 횟수도 줄어들었고 신부님의 소식을 듣기도 좀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서 방 신부님에 대해들은 이야기는 놀라운 것이었다. 신부님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 처음에는 안동의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가 상태가 좋지 않아서 서울의 성모병원에 입원을 하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한 말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지난달에 신부님을 뵈었기 때문이다. 그때 신부님은 건강하셨고 나에게 건강 조심하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나에게 건강히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나는 며칠을 그렇게 이상한 기분으로 보내다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전화를 하였다. 그랬더니 그 말은 사실이었고 신부님은 지금 입원중이라 하였다. 난 빨리 신부님을 뵙고 싶었으나 병원 실습 기간이어서 며칠을 더 보내고서야 서울행 버스를 탈수 있게 되었다.
병원에서 뵌 신부님의 모습은 지난날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나 놀랐다.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신부님은 눈에 띄게 야위어 계셨고 말씀도 잘 하시지 못하셨다. 병명은 뇌졸중(중풍)이었다.
이때부터 내 생활에도 크나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먼저 나는 대구와 서울을 정기적으로 옮겨 다니는 것이었다. 평일에는 대구에서 학교와 병원에서 실습과 공부를 하고 주말이면 서울의 병원에서 신부님 병간호 해드리고 이러다 보니 나는 무척이나 지치게 되고 모든 일에서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실수가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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