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광주는 이 민족이 되살아나는 모태입니다. 여기에서 생명이 자라고 여기에 내일의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월 광주를 거치지 않고는 참 생명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월 광주는 힘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으며, 참 삶은 우리 모두가 손에 손을 맞잡는 데서 전해오는 따스함에 있다고 증거합니다’
이 내용은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배포한 ‘오월 민중항쟁 추모미사 강론자료’의 일부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처음으로 맞이한 올해 13주년째의 5·18은 여느 해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김영삼 대통령이 자신의 정부가 5·18의 연장선 위에 서있는 민주정부임을 선언하고 광주의 명예회복과 상처치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힘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민과 관이 처음으로 합동추모제를 올리고 평온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그날을 되새기는 각종 행사가 베풀어진 것이다. 그리고 참배객의 수도 10여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가시적인 변화들로 광주의 응어리가 다 풀린 것은 물론 아니다. 지금까지 광주 문제 해결의 선결조건으로 제시돼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남아있다.
김 대통령이 역시 이 문제만큼은 역사의 심판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정치권과 재야 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광주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그 다음에 명예회복과 보상 등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진상은 이미 지난 5공 청문회 때 거의 다 드러난 것이 사실이지만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미해결로 남아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한번 냉철히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그것은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하지 않고는 광주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악을 악으로 갚아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사고는 자칫하면 5·18의 숭고한 정신을 퇴색시킬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5·18이 참으로 위대하고 이 민족사에서 새로운 획을 긋는 민주화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5·18이 겪은 고통과 아픔과 희생을 기꺼이 끌어안을 수 있어야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가해자들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어야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성은 그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그 원수들을 참으로 용서한데서 찾아볼 수 있다. 만일 예수의 용서가 없었다면 그 죽음은 결코 빛을 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강론자료의 내용처럼 광주가 이 민족이 되살아나는 모태가 되고 여기서 생명이 자라고 내일의 희망이 있기 위해서는 원수까지도 용서할 수 있고 그들과도 함께 손을 잡을 수 있어야할 것이다. 바로 이 일에 우리 교회가 앞장서야 할 당위는 재론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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