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으로는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로 그리고 실천적으로는 1970년 처음 지구의 날 이후로 전 세계는 생명운동을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한국교회는 1990년에 비로소 이 운동의 전선에 아주 늦게 끼어들었다.
첫 단추는 끼웠는데 좀 엉거주춤한 상태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본당 신부님들이 이 운동에 대하여 공감을 하면서도 사목과는 별개의 문제로 다루기 때문이다. 이른바 개인 영혼 구원의 영적 전통에 묶여 있다. 골수에 박힌 ‘이원론’ 때문인지 이 운동은 교회 밖의 운동이며 그냥 좋은 일이지 하고 넘겨 버린다.
최근 본당마다 하고 있는 생명운동의 전술이 확산되어 가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지만 전체적인 힘이 없다. 본당 교구 그리고 사목지마다 다르고 연대가 전혀 없다. 어느 본당에서는 자연 보호의 일종으로 환원시켜 버린다. 본당 사목이 신부님의 취향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
신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주체적인 영성이 없다. 하루아침에 신부님에 따라 방향이 획획 바뀐다. 결국은 수동적이고 미성숙해지고 비판적인 안목이 없어 전체 교회의 풍요함이 고갈되고 만다. 교우들이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다보면 냉소적이 되거나 빤들빤들한 신심으로 전락해 버린다.
무엇이 문제인가? 교회가 시대의 표정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사목자도 사회운동이나 범신론과 분명히 달라야 하는데도 신학과 영성의 빈곤으로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에서 볼 때 힐데가르트가 눈에 들어온다.
비록 그분의 작품을 피상적으로 읽는다 하더라도, 그녀의 저작은 지난 1600년 동안에 우리의 신학적인 판단을 장애하는 곁눈가리개로 되어왔던 ‘타락 구원의 영적 전통’에 대한 하나의 대안인 ‘창조를 중심으로 하는 영적 전통’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이원론이 아닌 ‘전체적인 우주론’과 ‘지구의 녹화’를 제시했다. 그것도 지금부터 9백 년 전에 교육받지 못한 한 여성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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