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힘이 들어서 나는 몇몇 친구들에게 사정이야기를 하였고 친구들은 나를 위해 여러가지 도움들을 주었다. 노트필기도 해주고 미리 역이나 터미널에 가서 표도 예매하여 주고 가끔씩은 대리출석도 해주었고 나와 신부님을 위해 기도도 해주었다. 나는 이러한 친구들의 도움으로 모든 시간과 정성을 신부님의 병간호에만 썼다.
이렇게 얼마동안 시간이 흘렀고 나는 육체적·정신적으로 많이 지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체중이 줄어들어 보기에도 표시가 나게 되었다. 신부님 역시 말씀은 안하셨지만 나의 건강에 대해 걱정을 하고 계셨고, 어느 날인가 신부님은 나에게 새로운 말씀을 하셨다. ‘도미니코 나는 도미니코가 나를 위하여 얼마나 많이 희생하고 있는지 알아요. 하지만 이제는 그만 하세요. 중요한 시험도 있고 실습도 계속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 병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씩만 나를 만나러 오세요. 다행히 곁에서 간호를 해주는 사람도 있고, 친구 신부님도 자주 들리니까 힘들거나 외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건 순명해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그러시고는 내 손을 꼭 잡으셨다. 나는 신부님께 ‘신부님, 저는 지금까지 신부님께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저에 대한 신부님의 사랑과 은혜는 죽을 때까지 갚아도 다 갚아 드리기가 힘들 것입니다. 이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훌륭한 간호사가 되어 신부님과 같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신부님과 스페인에 계시는 은인이 좋아 하시게 되고 저 역시 여러분들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신부님이 아프시면 어떻게 하세요’
‘도미니코 나는 도미니코를 위해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까지 내가 한 모든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에 따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통해 무엇인가를 하신 것이지요. 혹 도미니코가 나를 통해 받은 것이 있다고 생각 하신다면 내가 아닌,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부담이나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알겠지요? 그리고 앞으로는 꼭 한 달에 한 번씩만 나를 만나러 오세요. 부탁입니다’
이것이 나와 신부님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날 이후 나는 내 뜻이 아니라 신부님 뜻에 의해 한 달에 한 번씩만 신부님을 뵐 수 있었고 신부님의 병환은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부님은 서울의 성모병원에서 교구청이 있는 안동의 병원으로 옮기셨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고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안동의 병원으로 신부님을 뵈러 갔었지만 신부님은 아무런 말씀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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