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분노를 느끼기 쉬운 시대에 힐데가르트는 감히 우리들이 하느님의 기쁨을 느끼도록 했다. 거의 9백년 전에 맑고 아름다운 바바리아에서 살았으며 또는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빙겐의 힐데가르트는 8살부터 성 Disibode수녀원에서 살았으며 그녀는 시인, 수녀원장, 음악가, 미술가, 약초 학자, 과학자, 신학자, 예언자 그리고 신비주의자였다. 오늘까지도 신학자들은 이성적인 왼쪽 두뇌에 신학적 구조를 세우고 있는데 반해 지금으로부터 거의 9백년 전에 소박하고 교육받지 못한 이 여성은 직관적인 ‘오른쪽 두뇌’의 체계를 제시한 것이다. 왜 우리는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에 왼쪽 두뇌에 모두를 걸고 오른쪽 두뇌를 배제하였는지 물어야 한다. 종합병원이 뉴턴이나 데카르트 식으로 인간을 각 과(科)로 쪼개놓은 것처럼 우리의 신학도 하느님을 뉴턴식으로 각 학(學)으로 갈라놓고 있다. 이제 우리는 왼쪽 두뇌에 정성을 쏟은 만큼 오른쪽 두뇌에도 정성을 쏟기 시작할 때이다. 느끼는 시대인 오늘날 찬미와 기쁨, 상상과 감수성, 감동과 신비로서 오른쪽 두뇌를 교육과 신학에서 환영해야할 것이다.
힐데가르트가 우리에게 준 가장 훌륭한 개념들 중의 하나는 다른 어떤 신학자에게서도 결코 발견하지 못했던 용어이다. 그녀는 Viriditus 즉 ‘푸르게 하는 힘’이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었다. 그녀의 시에는 나무와 풀의 아름다운 녹화와 지구의 녹화, 지구에 대한 사랑, 창조주에 대한 사랑을 여성의 감수성으로 노래한다. 그녀는 수많은 신비주의자와는 달리 세계를 부패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세계로부터 도피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을 기쁨과 경이, 찬미와 경외, 바로 어머니로 창조주의 사랑을 느끼는 자리로 본다. 힐데가르트에게는 성령을 푸르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하였으며 구원 또는 치유도 푸르게 하는 힘과 슬기 즉, 촉촉함의 회복으로 이해하였다. 그런 반면에 우리 금수강산을 푸름이 상실되었고 이 사회의 가치관은 건조하고 메마르다.
생명신학을 정립하는데 있어 남성으로서의 성 프란치스코와 여성으로서의 힐데가르트를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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