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신부님은 우리들의 곁을 떠나셨다. 나는 신부님의 장례식에서 여러 어른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들었다. 나와 신부님의 관계를 아시는 분들은 모두 나에게 칭찬을 해주셨다. 신부님이 한국에서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었는데 장례식에 참석한 학생은 나 혼자였다.
신부님은 교구청의 성직자 묘지에 잠드셨고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 열심히 일을 하였다. 지금 열심히 배우고 기술을 익혀야만 언젠가는 나 혼자서 이 기술과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간은 참으로 잘 흘러가 주었다. 신참 햇병아리 간호사였던 내가 어느새 인정받는 경력 간호사가 되어 있었고 나를 따르고 나에게서 배움을 가져가는 후배간호사들이 생기게 되었으니. 내가 경력 간호사로 인정받고 있던 어느 날 서울에 문을 연 맹중복 장애아시설인 라파엘의 집에서 상주 봉사자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잡지를 읽게 되었고 몇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 하였다.
부모님께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취직이 되어 자리를 옮기에 되었다고 편지를 드리고 병원에는 집안에 급한 환자가 생겨 하루라도 속히 내가 가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우리 의료인들은 사직 3개월 전에 사직서를 제출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난 사직서를 제출하고 일주일 만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
가방 하나만 챙겨 나는 서울에 내렸다. 신부님께 진 많은 빚들을 갚아야 한다는 한가지의 생각만으로 나는 서울에 온 것이다. 봉사자 생활도 처음이고 더욱이 맹중복 장애아와의 생활도 처음이여서 나는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었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나는 신부님을 생각하였다. 언어나 습관, 이 모든 것이 다른 우리나라에서 겪어야 했던 신부님의 첫 활동 모습들을, 그런 것들이 나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러워지고 조금씩의 마음의 안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몇 개월을 나는 라파엘의 집에서 생활하였다. 그곳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주기보다는 아이들과 여러 봉사자로부터 받은 것이 더 많았다. 비록 말은 못하고 보지는 못하는 아이들이였지만 사람을 사랑하고 따르는 법과 누구든지 믿는 법을 배웠고 같은 봉사자로 있던 방그라시오 형제와 토마스 형제로부터는 비워야만 채워진다는 것과 적당한 시기가 오면 떠나야 한다는 걸 배웠다.
정말이지 신기하고 아름다운 진리였다. 우리들이 끼니가 없어 걱정을 하고 있으면 어디에선가 라면이며 쌀이 생겼다. 나는 그 라면과 쌀이 너무나 귀해 창고에다 쌓아두고 먹자면 두 형제들은 우리가 한 끼 먹을 만큼만 남겨두고 우리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들에게 라면과 쌀을 나누어 주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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