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미국에 있을 때 알게 된 베드로라는 형제 한 분의 전화가 왔다. 한식을 맞아 할아버지 묘를 이장하기 위해 갑자기 나오게 되었다며 오랜만에 만나서 회포를 풀자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베드로 형제가 무척 반가웠다. LA를 방문할 때마다 나는 마치 내 집처럼 그 집에 드나들며 숙식이며, 심지어 자동차까지 필요할 땐 내 것처럼 사용했던지라 그 신세는 다 갚을 수 없는 처지였기에 이따금씩 베드로 형제가 방한 할 때마다 조국에 대한 옛 추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허름한 대폿집에서 벅적대는 사람들 속에 끼어 마음껏 소리 지르고 마실 수 있는 소주 한 잔의 대접은 나로서는 당연한 의무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가 나의 사무실로 방문을 했을 때 우리는 뜨거운 포옹으로 서로의 안부 인사를 대신했다. 베드로 형제는 화가이다. 한국에서 명문S대를 졸업하고 70년대 중반 유학 후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화가로써의 작품활동을 계속하기엔 그곳 생활이 너무 힘들어 한동안 붓을 놓았던 적도 있었다.
신앙생활도 한동안 휴가를 맞고 있었다.
이때 우연히 어떤 분의 소개로 나와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후 우리는 지금까지 만나면 끊임없이 신앙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때론 종교에 관한 토론을 진지하게 나눈다. 이날도 우리는 잘 가는 대폿집으로 자리를 옮겨 2년만의 회포를 나누었다. 베드로 형제는 가끔씩 괴변을 늘어놓아 사람을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예술가들이 지니는 특성이랄까. 고집이랄까. 아무튼 그의 괴변은 엉뚱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 철학이 있고 종교적 의미가 들어 있었다.
그날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물었다. “요즘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요즘에는 사막에 자주 나갑니다” 그 대답이 매우 이상하게 들렸다 “아니 사막에 자주 나가다니요 요즘 한가하십니까?” 이런 질문에 그는 빙긋이 웃으면서 “도시에는 볼 것이 너무 많지요. 볼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를 볼 시간이 없어서지요!”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작가로서 작품 구상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는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절박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자신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불쌍하게 생각되는지……” 뒤의 말을 채 이어가지 못하고 소주를 들이키는 그를 보고 주님도 우리를 이런 마음으로 보고 계시지나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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