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어느 학자는 말하기를 “인간만이 웃고 또 울 수 있다”고 하였다.
웃는 사람은 기분이 좋고 정이 느껴지며, 우는 사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방실거리는 소녀의 웃음은 가슴 설레게 하고 살포시 짓는 미소는 꿈꾸게 하다. 깔깔거리는 웃음은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호방한 웃음은 통쾌하다.
우리는 즐거워서 웃고 어이없어서 웃고 허탈해서 웃는다.
누구의 이야기에서 위트(WIT)를 느낄 때 웃고, 우스꽝스러울(COMIC)때 웃는다. 사람의 어떤 실수, 우발적인 것, 기계가 아닌 인간이 기계적인 동작을 할 때 웃음을 자아낸다.
아주머니들이 미국여행을 하다가 교통순경한테 걸렸다. 한 아주머니 왈 “Look at me well ! (잘 봐주세요)”하니까 교통순경 왈 “No soup today(국물도 없다)”하더란다. 이 이야기가 웃음을 자아내는 연유는 우선 그 영어가 Konglish(Korean english)인데다 위트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공식과 정규를 벗어난 데서 오는 해방감 때문인 듯하다.
사람은 자기가 다른 사람과 유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한 우스운 것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웃음은 남들의 반향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웃음이 지니고 있는 유용한 기능은 사회적 기능이다. 웃음은 공동적인 삶의 어떤 필요에 대답하는 것이다.
베르그송(Bergson)은 “희극적인 것은 아주 평온하고 잘 조화된 영혼의 표면에 닿을 때에만 그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듯하다”고 말하였다.
울음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슬퍼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너무 기뻐서 운다. 감격의 뜨거운 눈물도 있고 회한의 싸늘한 눈물도 있다.
너무 기가 차면 눈물도 안 나온다. 극한상황의 고비를 넘겨야 비로소 눈물이 나온다. 울음의 종류가 1백70가지나 된다고 하니 사람의 감정은 참 복잡하고 섬세하기도 하다.
속이 상하거나 슬플 때, 실컷 울고 나면 어느 정도 속이 후련해진다. 울음은 응어리진 감정을 정화(淨化)시키는 역할을 한다. 눈물이 흘러내릴 때 감정의 찌꺼기도 함께 씻겨 내리는 듯하다.
찡그리고 속상해 하면 아드레날린(Adre-nalin)이 분비돼서 얼굴색이 죽고 건강을 해친다. 반대로 많이 웃으면 엔도르핀(Endo-lpin)이 분비돼서 혈액순환이 원활해지고 얼굴색이 환해진다. 웃음은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작용을 한다.
많이 속상해 하는 사람, 스트레스를 풀지 않고 쌓아가는 사람은 암에 잘 걸린다고 한다.
유머와 우스개는 우리 생활에 대단히 요긴한 것 같다.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노래 부르거나 웃으면서 그날그날 스트레스를 푸는 게 좋을 듯하다. 웃음과 울음은 다 같이 슬픔과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감정의 찌꺼기들을 정화시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웃음골짜기와 눈물샘은 아주 가까이 있는 듯하다.
요한아! 지금은 어디에 있니?
저 하늘가에 네 웃음소리 들리는구나!
비오는 날 더더욱 내 마음
네 무덤가에 가 머문다.
이런 경우 그 아이의 웃음은 곧 어머니에게 울음이 되어 돌아온다.
만약 인간이 마음껏 울 수도 없다면 가슴께가 폭발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신은 인간이 어차피 슬픔의 고통을 겪게 될 걸 아시고, 울 수 있는 기능을 주셨나 보다. 그러고 보면 울 수 있는 기능도 신의 축복인 것 같다.
신앙인은 처절한 슬픔을 당했을 때 하느님께 매달리며 울 수 있다. 울고 매달리며 빌 곳이 있는 신앙인은 행복하다.
웃을 때의 즐거움과 재미, 울고 나서의 후련함, 웃음과 울음은 아무래도 서로 닮은 것 같다. 신은 웃음을 통해서 뿐 아니라 울음을 통해서도 은총을 보내신다.
우리가 희극에 쉽게 끌리는 건 부담 없이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희극보다 비극에 더 마음이 이끌리는 건, 비극이 희극보다 더욱 적나라하게 우리의 삶을 드러내기 때문일까? 비극이 희극보다 더 심각하고 진지하며 깊이 있게 인생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비극을 통해서 우리의 슬픔을 승화시킬 수 있기 때문일까?
이제 여기서 ‘울기는 쉽죠’란 시 한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독일 시인 루이스 휘르베르크의 시를 함께 감상하자.
울기는 쉽죠. 눈물이야 도망가는 세월처럼 쉽게 흘러가지만 웃기는 어렵답니다. 마음속으로 이를 악물고서라도 웃어보세요.
돌과 먼지와 쓰레기더미 위에서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눈물의 바다를 이루더라도 웃고 믿으면서 우리가 지을 집을 지어봅시다. 그리하면 믿음은 얻게 되고 지옥은 사라져 가지요. 웃기는 어렵지만 산다는 것은 웃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삶은 참으로 위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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