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러고 있는 동안 집안에서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큰 병원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서울로 간 아이가 1년이 넘게 소식도 없고 가족도 찾지 않으니. 어떻게 소식이 닿았는데 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시다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곳의 일들 때문에 나를 믿고 나를 따르는 아이들을 버리고 갈 수 없어서 난, 임마누엘 집을 어느 수도 단체의 신부님께 맡겨 드리고 다시 춘천시립 갱생원으로 갔다.
갱생원에서 나는 살아있는 예수를 만났고 많은 천사들을 보게 되었다. 갱생원은 광주의 어느 수도 단체에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약 2백명의 식구들이 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자식이 되기도 하며 그곳에서 봉사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허원행 아저씨를 만났다. 무슨 병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저씨의 상태가 심하여 춘천 시내의 종합병원에 입원을 하셔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보호자로 갈 사람이 없어 내가 보호자가 되어 그분과 같이 일주일을 병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난. 이 일주일을 잊지 못한다.
전신마비이기 때문에 아저씨는 움직이지를 못하셨다. 그러니 대변도 앉아서 보시지 못하고 누운 상태로 보셔야 했다. 솔직히 말해서 왜 더럽지 않겠는가. 나는 아저씨의 변을 치우기가 싫었다. 냄새도 심하게 났고, 계속 설사로 변을 보시기 때문에, 그러다보니 아저씨도 미워졌고, 아저씨가 미워지다 보니 말이나 행동이 곱고 공손하지가 못하였다. 변을 치울 때도 마스크를 하고 고무장갑을 끼고 치웠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하루에 열 번 정도는 치운 것 같다.
난 병원에 있는 것이 싫어 빨리 갱생원으로 가려고 했으나 아저씨의 병은 차도가 없었고, 갱생원에서 누군가가 나와 교대를 해줄 사람도 없었다. 싫었지만 나는 아저씨의 보호자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인가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아저씨가 기도를 하시는 소리였다. 더 자세히 들어보니 나를 위해 하는 기도였다.
아저씨는 내가 잠든 줄 아시고는 나를 위해 기도를 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나에게 복을 내려주시고,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난 미치도록 가슴이 뜨거웠고 죄스러움과 창피함에 그 자리에 그냥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난 나 자신이 밉고 싫었다. 이런 마음으로 무슨 봉사를 하며 남을 위해 희생한다고 할 수 있으며 신부님께 진 빛을 갚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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