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개혁정부가 초반에 인기와 신뢰를 얻었던 이유는 다수 대중이 계층 간의 구별 없이 ‘공감하는 일’을 ‘납득이 가는 방법’으로 추진한데 있다.
정치권에 대한 사정이나 금융·교육계에 대한 개혁조치 같은 게 그런류다.
그런 똑똑하고 무소불위의 능력을 지닌 개혁정부도 어쩐 일인지 종교 쪽에는 행정적 수완이야 어떨지 모르나 어딘가 좀 무지해보이고 관념적이고 속세적사고로 대처하는 것 같다.
공보처가 종교계와의 사전 협의나 종파별 종교지도자 그룹과의 자문절차는 아예 생략해버린 채 지극히 관료적인 행정행위만으로 종교방송 허가 방향을 설정, 발표했다가 종교계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분식점 인허가나 가요방 허가 같은 민원행정과 달리 종교방송의 인허가는 처리방법과 자세에서 무언가 깊은 사색이 있었어야 할 텐데 시안의 특성을 차별화한 노력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전파가 정부 것이 아닌 국민의 것이라는 초보적인 방송개념 인식에서부터 벗어나 있어보인다. 물론 국민의 것이라도 효율적 관리에 대한 책임과 권한은 정부가 위임 받아있고 그래서 관리를 위임받은 전파를 어느 종파에 몇 개의 채널을 배정하는 정부 맘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위탁된 권리이니까 더더욱 신중하고 합리적이며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방송제도 연구위원회가 펴낸 ‘2000년대를 향한 한국방송의 좌표’에는 방송의 이념을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방송은 사람을 위해서 있어야 하며 방송은 사회자는 삶의 터전을 위해 이바지해야 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촉매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 중요한 지적은 방송이념이 묵시적으로 도덕성과 국교적 신념에 공정성을 기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돼있다.
과거 우리의 방송이 정치적인 성격을 띈 권력구조에 의해 강요되고 지시된 방송이념에 굴종했던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지금은 개혁정부가 자찬하는 문민시대다.
따라서 새롭고 올바른 방송이념 바탕위에서 종교적 신념에 공정성을 기하도록 도와주는 방송, 나눔을 실천하는 촉매로서의 방송이 되도록 정부 스스로 인식개혁이 요구된다.
어떠한 정치적 배려나 통치자의 개인신앙과 연계됐다는 오해를 가져올 행정조치는 배제돼야 하는 것이다.
공보처가 내놓은 종교방송 지방허가 방침은 그러한 새로운 방송이념 인식면에서 문민정부가 아직 덜 깨어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특히 종교방송의 영역에서 정부쪽이 예민하게 판단해야 할 것은 지방국의 형태에서 과연 어떤 운영형태가 종교간 지역 간의 특성을 고려해볼 때 가장 합리적인 것이 될 것이냐는 부분이다.
어느 지역에 몇 개를 허가하느냐를 평형의 문제 못잖게 종교에 따라서는 지방네트사를 허가할 경우 방송의 내용상 지방 청취권내의 신자들에게는 교리상 또는 교구관찰과 같은 교회조직의 특성상 단순한 전파중계에 지나지 않는 지방방송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연예 오락 프로야 문제가 없지만 천주교의 경우 교구장의 사목교서 전달과 같은 종교방송의 본질적 내용에서는 지역별로 독립된 방송사로 허가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종교방송 특유의 성격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을 행정가등도 파악했어야 할 대목이다.
6월 12일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가 채택한 결의문대로 종교방송 지방국 허가문제는 전면 재검토와 함께 각 지역별 독립된 형태의 허가문제도 행정적 사고가 아닌 종교계의 의견을 겸허하게 수용하여 현실감각으로 재검토해 주기 바란다.
개혁정부가 지녀야 할 방송이념은 전파를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하기보다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종교적 사념에 공정성을 갖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전파를 이용할 것이냐는 수단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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