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이전부터 역사가 흘렀던 낙동강 1천3백리에 지금도 강원도 태백에서 부산 사상에 이르기까지 1천3백만이 살고 있다. 낙동강 1천3백리에 1천3백만, 한반도의 중추였다. 1천3백리와 높은 산과 곧은 산맥의 만남, 강과 산의 어우러짐, 음양의 조화로써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지 않았던가! 낙동강은 우리의 젖줄이고 어머니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 PPM BOD, COD의 수치나 의미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 낙동강에 사는 송사리는 어디에 갔는가? 낙동강에 멱감는 어린이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공업용수만도 못한 물을 우리가 마시고 있다. 송사리도 살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낙동강을 먹는 사람도 송사리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서서히 죽어간다. 서서히 죽어가는 것, 사라지는 것, 바로 이것이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낙동강이여 죽든 말든 지하수 파고 나만, 내 가족만 생수 마시면 되지 않겠는가 라는 집단 이기주의도 큰 문제이다. 페놀 사건 이후 대구시민들은 낙동강을 살릴려고 하지 않고 생수를 받으려고 야단법석을 하고 있다. 지하수도 오염되고 산천도 오염되면 그땐 어떻게 되겠는가? 요즈음 대구의 상황은 교육과 문화, 정치와 사회, 선교 면에서 거의 제로에 가깝다. 낙동강이 죽어 가면 우리의 얼, 자존심, 가치도 죽어간다.
낙동강의 기적은 공단의 검은 물이 흐르는 것인가? 아니면 송사리, 은어, 붕어, 메기 등이 살고 어린이들이 물장구 치고 노는 것이 그야말로 기적이 아닌가! 문제는 대구와 구미지역의 공단이다. 3공, 5공, 6공의 세 대통령이 자기 고향 사람들로 하여금 결국 수돗물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없는 불행에 떨어지게 하였다. 자기 고향을 발전시키려고 낙동강 유역에 공단을 조성한 그 특혜로 욕은 욕대로 얻어먹고 표는 표대로 주고 얻어터지는 사람들은 TK 뿐이다.
현대의 의병인 「생활인 시민들」이 나서자. 낙동강에 관심을 기울이고 낙동강에 나가보라. 그리고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하여 도덕적인 압력을 가해서 가능한 한 빨리 낙동강의 수질 보존을 위하여 투자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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