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밤새도록 병원복도에 앉아 많은 생각들을 하였다. 솔직히 모든 것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침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병실로 돌아온 나는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아무 말 없이 아저씨의 변을 치우고 세수를 시켜드리고 식사를 드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냄새가 지독하여 견딜 수 없으리만치 괴로웠던 일이 오늘 아침에는 너무나도 쉽고 편안하게 이루어졌다. 이렇게 나와 아저씨의 관계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나는 아저씨에게 대세를 드렸다. 대세를 받으시면서 아저씨는 한없이 우셨고 나 역시 많이도 울었다. 그 밤이 그렇게 지나고 다음날 아침 아저씨는 갱생원으로 퇴원을 하셨다. 완쾌가 어려워 퇴원을 하시기로 한 것이었다.
저녁 무렵 아저씨의 상태가 중하다는 연락을 받고 내려가니 아저씨는 점점 더 힘들어 하고 계셨다. 혹시나 해서 여쭈어 보았더니 사과가 먹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주방에 가서 사과를 갈아 주스처럼 만들어 아저씨께 드렸다. 아저씨는 나의 사과주스를 한 수저 받아 드시고는 운명하셨다.
입관이 다 끝나고 요한 형제가 연도를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나의 울음은 시작되었다. 당신에게 그렇게 잘못하던 나에게 복을 주라고, 자비를 주라고 기도하시던 아저씨의 모습과 대세를 받으시면서 우시던 아저씨의 모습, 마지막 운명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다음날 갱생원의 모든 식구들이 모여 기도를 드리는 중에 아저씨는 갱생원의 뒷산에 묻히셨다. 2백명 모두가 울었고 아저씨를 위해 기도해 드렸다.
아저씨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는 일주일을 앓았다. 몹시 지친 모양이었다. 난 어디에서 좀 쉬고 싶었다.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갱생원을 운영하고 있는 광주 수도원에 가서 잠시 쉬기로 허락을 받아 춘천을 떠나 서울로 왔다. 서울에서 안부나 전하고자 집에다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 연락을 하며 나를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단다.
나는 수도원에 가는 걸 뒤로하고 집을 향했다. 이렇게 나와 어머니는 다시 만나게 되었고 나는 어머니의 대소변을 일주일간 치워드릴 수 있었다. 이렇게 여섯 밤을 어머니와 같이 있었고 일주일이 되던 날 어머니는 운명하셨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시간이었다. 물론 힘들고 괴롭고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그렇게 5년을 봉사자 생활을 하였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방 신부님께 진 빚을 갚아드리기 위해서. 그런데 나는 5년 동안 빚을 갚기는 커녕 더 많은 빚을 지고 말았다. 내가 그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과 더 많은 애정을 받았으니까. 난 오늘도 빚을 지고 살아간다. 언제쯤에나 이 무거운 빚더미를 줄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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