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47세 성녀 율리안나라는 세례명으로 어느 추웠던 성탄절 전야 인천교구 답동성당에서 흰옷을 입고 영세한지도 벌써 27년 세월이 흘렀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모든 점이 나와 비슷한 남편을 만나 두 아들과 딸 하나를 키우면서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자 했던 내 뜻은 살아온 삶과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듯하다.
지금 현재 인천 예림특수학교 중등부에 다니는 배민희(모니카)는 올해 18세 숙녀로 다자란 천사 같은 정신지체아로 우리 딸아이이다. 그동안 내가 겪은 날들은 많은 시련과 고통이었지만 그것 모두를 이길 수 있는 은총을 주신 하느님의 사랑은 한없이 크시고 감사할 뿐이다.
친정아버님을 어려서 잃고 갖은 고생을 다하며 동생들 뒷바라지 마치고 좀 늦은 나이에 중매로 남편을 만났다.
시댁은 개신교를 믿는 가정이었고 시어머님은 권사직분으로 온 시골마을 사람들에게 전도하셨고 교회를 세우시는데도 앞장서실 정도로 열심하셨다.
7남매 중 둘째며느리인 나 혼자만 천주교 신자였으나 같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 속에 언제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남편은 건설회사 기능직원이라 먼 현장근무를 하게 되어 우린 전남 장성까지 가서 살게 되었다. 그곳은 장성읍에 성당이 있어 늘 버스를 타고 다니며 관면혼인도 두 분 수녀님의 증인앞에서 올려야했다. 또한 첫 아들 훈희를 낳아 세례자 요한으로 수녀님이 세례명도 지어주셨다.
한 삼년간 살아갈 무렵 중동으로 건설진출 붐이 일어날 때 우리 역시 내 집을 마련해서 잘 살아보자며 굳은 결심 끝에 남편은 사우디로 떠났다. 76년 초봄 만삭이었던 나는 남편을 보내고 한 달 후 친정 곁에서 방을 얻어 딸 민희를 낳았다. 체중은 좀 작았지만 얼굴이 동그랗고 눈이 초롱한 예쁜 딸이었고 사진을 받은 남편도 이제 남매를 잘 키우자며 몹시도 좋아했었다.
3개월이 되었을 때 이웃분의 조언으로 모니카란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도 시켜주며 열심히 남편을 기다렸다. 그런데 6개월쯤 지났을 때 가랑비가 내렸던 가을 새벽에 방으로 연탄가스가 많이 새어들어 가장 약하던 딸 모니까가 심하게 중독된 것이었다.
혼자 낳아 기르던 중에 뜻하지 않은 사고는 나를 정신없게 만들었고 젖도 빨지 못하고 차갑게 늘어지는 아기를 업고 어떻게 새벽길 병원으로 달렸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윤수길씨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인천시 산곡2동의 이순분 율리안나씨의 ‘나의 주님’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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