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율곡비리와 관련, ‘현직 국방장관이 출국금지자’라고 보도한 중앙일보 취재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전격 구속함으로써 야기됐던 이른바 ‘정재헌 기자 사건’은 가해자라 할 수 있는 정부와 피해자인 언론에 모두 하나의 큰 교훈을 주었다.
언론에 대해서는 확인 절차의 중요성과 함께 뉴스원의 인용에 얼마나 신중을 기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줬고 정부에 대해서는 섣불리 언론 길들이기 시도를 하다가는 부담만 더 안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준 것이다.
한때 정부와 언론간의 전면적 대결양상으로까지 확대됐던 사태는 당사자인 국방장관이 고소를 취하해 다행히 발생 일주일 만에 비교적 모양새 좋게 끝났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들에게 언론의 책임문제, 정부와 언론과의 관계, 정부의 바람직한 언론관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게 한 계기를 제공한 것 같다.
단순한 ‘오보사건’처럼 처음에 보였던 이번 사태가 시간이 흐르면서 언론 탄압, 언론자유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정부의 과잉대응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중앙일보는 문제가 발생하자 즉각적으로 기사를 전면 취소하고 정정과 함께 사과문까지 게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언론중재위를 거치지도 않고 곧바로 형사사건화하여 사장에서 기자까지 5명을 무더기 고소했고 검찰이 이를 받아 고소장 접수 38시간 만에 취재기자를 전격 구속함으로써 정부의 계획적인 언론 장악 음모라는 의심을 자아냈던 것이다.
거듭된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동안 언론에 대해 ‘한번 걸리기만 해봐라’는 식으로 벼르고 별러왔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문민정부 출범 후 90여 건이 넘는 각종 크고 작은 오보로 인해 개혁작업 추진이 막대한 위해를 받았고 특히 구시대 비리를 척결하는 사정 작업과정에서 개인의 명예나 인권이 침해된 사례가 없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조차 ‘언론이 요즘 너무하는 것 같다’, ‘언론은 사정 안하나’는 식의 불평이 나와 정부 측에 칼을 뽑도록 용기를 준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솔직히 말해 언론의 취재 관행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군부 권위주의체제 아래서 일부 언론은 ‘정치기사’를 쓰지 못하고 변죽을 울리는 ‘정책기사’를 갖고 서로 경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품질 미달의 기사가 수없이 양산되기도 했다.
70년대초 필자 자신도 △부유세 신설 △남대문, 동대문 시장 폐쇄 △실업보험제 전면 실시 △종교재단 운영학교에서의 종교교육 금지 등 설익은 기사, 연구 논문성 기사를 마치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것처럼 기사화했던 전력이 있다.
기자 자신이 뉴스원이 되는가 하면 ‘여당 소식통’ ‘정부 관계자’ ‘관계당국’ ‘정부소식통’ 등 불확실하고 애매한 뉴스원을 인용한 기사는 1면 머리기사로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쓰기가 곤란한 내신은 워싱턴 또는 동경발로 각색돼 ‘외신’처럼 실렸고 중요한 코멘트를 기자 스스로 만들어 쓰는 사례마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이러한 언론의 과거 관행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정부의 악수(惡手)의 연속에 의한 ‘불행한 사건’이었다.
명예훼손으로 걸만한 고의가 없음에도 법적 대응을 시도했고 도주,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취재 기자를 구속시켰으며 언론 길들이기 조치에 국민 모두가 박수와 호응을 보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달랐던 것이다.
정부가 재빨리 고소를 취하하고 94년까지 행정정보 공개법을 제정하여 언론의 오보를 줄이기 위해 정부 각 부처 차관, 공보관이 창구가 되어 언론사의 사실 확인 요청을 적극 수용한다는 후속조치를 발표한 것은 이 같은 저간의 상황을 감안할 때 매우 적절하고도 현명한 판단인 것 같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정부의 대언론관 교정이다. 아직도 정부 일각에는 언론을 개혁추진의 걸림돌 내지는 수구 세력의 일파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들은 언론이 새정부 출범으로 과거 누리던 특권을 대부분 상실, 기회만 있으면 반개혁 세력을 부추겨 옛날의 특권을 되찾으려 한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 같은 언론관이 시정되지 않는 한 정부와 언론간의 바람직한 관계 재정립은 어려울 것이며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작업의 성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항상 권력을 감시, 비판하고 각종 비리와 불의를 적발, 견제하려는 언론의 속성상 언론이 권력과 밀접한 긴장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불가피하다.
국민의 90%가 넘는 지지를 받고 있는 문민정부의 개혁 추진에 언론이 결코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정부도 개혁의 동반자라기보다는 감시자가 될 수밖에 없는 언론의 비판이나 이견제시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인내와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 것 같다.
정 기자 구속사건에 대한 언론계의 일치된 항의와 비판을 단순히 언론의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부의 대언론관을 포함, 언론정책 전반을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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