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미지근하게 믿던 내가 그때 처음으로 하느님을 부르면서 내 딸을 살려달라며 수없는 기도를 했다. 천만다행으로 깨어난 딸아이는 그 후 별 탈 없이 자랐지만 이상하게 발육상태가 늦어 내 마음을 늘 안타깝게 했다. 주위에선 좀 늦되는 아이라고 나를 위로했지만 내 마음은 항상 어두운 불안감에 싸여 있었다.
삼년후 남편은 건강히 돌아왔고 나 역시 새로 지은 내 집도 마련하고 딸 모니카는 걸음마도 말도 배우면서 자라나 그런대로 행복했다. 그러나 제 나이 또래들과 어울리지를 못하는 여러 행동을 보면서 갈피를 못 잡고 살아가던 중 어느 날 아침 TV 방송에서 ‘자폐아’란 단어가 내 귀를 크게 울렸다. 바로 딸의 행동과 일치하는 내용들을 보는 순간 아- 그렇구나 내 딸이 바로 뇌손상을 입은 자폐아란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날 이후 이 딸을 어떻게 키우나 하는 생각으로 내 머리는 온종일 혼란스럽고 방황할 때 마침 이곳 부평지역에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엠마누엘 조기교육원이 처음 생겼음을 알게 됐다. 주보를 보고 찾아가서 딸 모니카를 보내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딸보다 더욱 심한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몇 달 후에 수녀님은 딸한테 역효과가 있을까 우려하시며 일반 유치원으로 가도 좋다고 하셨다. 얼마나 기뻤든지 다시 큰 희망을 안고 딸 유치원 뒷바라지를 열심히 하였고 졸업을 한 딸 모니카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아이들과 어울리지를 못하는 것이 뚜렷이 나타났으며 교실 한구석에서 ‘바보’라는 놀림감이 되었다. 유치원이나 학원에서는 무용이나 노래 등을 그런대로 따라서 했지만 학교교육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음을 내가 잘 몰랐던 것이었다.
마음을 항상 졸이면서 1학년 한학기가 끝날 무렵에 나는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청했다. 그때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 민희는 정상학교 수업이 어렵고 특수학교 교육이 나을 거라고 하였다. 그보다 딸로 인해 반전체 수업에 많은 지장이 있다고 까지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에 딸 교육을 포기하겠다고 단호히 결정지었다. 내 딸은 저능아라 못 배우면 그만이지만 남들까지 피해를 준다는 사실은 나 자신이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께 인사하며 교실문을 나오는 그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에 온몸에 힘이 다 빠지면서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앞을 가려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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