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십자군(十字軍)의 역사적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사가에 따라 조금씩 다른 시각을 보여 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앙아시아 쪽으로 밀고나간 십자군 병사들이 많은 이교도들을 죽였다는 것과 때로는 유럽내의 이교도들까지도 무참한 살육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 역사자료에서는 교황청의 주교가 십자군 병사들에게 무분별하고 잔혹한 살육을 걱정하면서 “그대들은 이교도를 어떻게 구별하여 개종시키거나 죽이는가”라고 물었을 때 병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무조건 죽이기만 합니다. 그가 이교도인지 아닌지, 죽고 사는 건 하느님이 알아서 구별해 주십니다”
당시 십자군이 후반기에 몰이성적이고 가치가 전도된 집단사고에 빠져든 부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십자군이 남긴 역사적 과오의 바탕위에서 중세의 대중들은 종교와 군벌정치에 의해 속박된 삶으로부터 탈출을 염원하게 됐고 그러한 탈권위적인 의식은 문학을 중심으로 한 예술세계에서 표출되기 시작했다.
소위 ‘사랑이 효(孝)와 충성을 짓밟는 새로운 가치의 출현’이 그것이었다.
백작의 아들이 리고레또라는 정복된 노예 신분의 처녀를 사랑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러한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남으로써의 자유로운 성의 향유를 새롭게 추구한 중세인들의 사고전환을 표현한 대표적 작품의 하나다.
백작의 아들이 하녀 신분의 처녀를 사랑하는 전도된 가치를 비판한 아버지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질책하자 그는 과감히 나는 천국이 싫고 지옥을 택하겠다고 효에 대한 저항의 반기를 든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천국은 싫다. 천국에는 누가 가느냐 기껏 늙은 수도사와 헌금이나 많이 낸 부자와 위선적인 귀족들뿐이다. 지겹고 무미하다. 그러나 지옥에는 악사도 있고 유곽의 여자도 있고 노름생이도 있다. 인간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어 훨씬 재미있다”
그의 신가치관 속에는 이미 기존 종교의 고전적인 계도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돼있었다.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영지를 위협하는 적군과 싸워 이기면 하녀와의 결혼을 승락하겠다고 약속 했지만 막상 아들이 이기고 돌아오자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분노한 아들은 잡아온 적장을 풀어주고 아버지의 군대를 치게 하는 불효한 모반을 한다.
그야말로 사랑이 효와 충성을 짓밟는 전도된 가치관이 나타난 것이다.
리고레또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의 젊은 세대, 자유를 주장하고 속박을 기피하는 신세대들은 십자군 이후 중세 때 돋아났던 ‘사랑이 효와 충성을 짓밟는 사고’에 젖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을 버릴 수 없다.
신앙생활에 성실한 많은 젊은세대를 확인하면서도 일면 오렌지족의 출현과 청소년 범죄 증가현상을 현실로 확인하면서 ‘리고레또’의 교훈적 이야기를 불안한 마음으로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십자군이라는 억압되고 강제된 개종세력이 있었음으로써 반사적으로 이단적이고 저항적인 반종교적 사고가 더 강하게 표출된지는 모르나 대체로 자유주의 사상이 독재와 억압이후에 더 강하게 솟아나는 역사적 순리를 살피면 종교든 교육이든 지나친 제재와 속박이 반사적으로 이탈적 사고를 유발시킬 수도 있다는 가설이 가능하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교회는 늘어나도 참교인은 줄어가는 듯 한 공허’ 역시 그렇다.
일부지만 젊은이들은 물론, 사정(司正)을 겪으며 드러낸 어른들의 부패된 사고, 종교적 양심 마비는 바로 사랑으로 표현되는 물욕과 명예욕이 가정의 질서를 상징하는 ‘효’와 국가에 대한 의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상징하는 ‘충’을 짓밟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중세에 잘못 피어났던 리고레또의 반종교적 반란의식이 몇세기가 지난 오늘날 다시 세계도처에서 새로 돋아나고 있음은 커다란 시대적 불안이요 우리 스스로가 만든 잘못된 업보이기도 하다.
어디에 문제가 있었던가를 살펴야 할때다.
무엇이 오늘의 세대들이 효와 충을 짓밟는 전도된 가치(사랑과 물질)에 빠져들게 됐는지를 정치나 교육계에 앞서 우리 교회가 먼저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우리는 지금 중세 이후 또 한 번의 위기에 서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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