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꼭 10년 전의 일이다.
미국 미주리대학에서 1년간 연수를 갔다가 귀국길에 뉴욕에 들러 브로드웨이에서 ‘오! 칼카타! (Oh! Calcatta!)’라는 연극을 볼 기회가 있었다.
이민가 있는 친구가 자꾸 권했고 나 자신도 솔직히 한번쯤 보고 싶은 연극이었기에 몇 쌍의 커플이 함께 보러갔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선을 뵌 지 벌써 12년이 됐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몰려드는 관람객들로 표를 사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게 친구의 말이었다.
이미 신문, 잡지에 수없이 오르내렸고 말도 많이 들어왔기에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객석에 앉아 무대를 보려니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남녀 출연배우 모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로 나와 떠들고 춤추는데 물론 히어링 실력도 모자랐지만 너무도 큰 쇼크를 받아 무슨 소리인지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사를 알아듣지 못할 뿐 아니라 옆자리의 친구 부인들을 쳐다보기도 민망해 보는 둥 마는 둥 극장을 나왔다.
그때 느낀 소감은 한마디로 “미국도 이제 말세가 왔구나”라는 것뿐이었다.
10년 전에 받았던 이 쇼크를 이번엔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 서울에서 다시 한 번 체험했다.
우연히 최근 신촌 주변의 한 소극장에서 본 연극은 나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오! 칼카타!” 정도는 아니었지만 남녀 배우가 거의 전라가 되는 장면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간신문들이 사설에서 벗는 연극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함께 경고를 가하고 사회, 문화면 기사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취급하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문기자 생활 25년 동안 문화부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지만 그런 연극을 직접 보고는 뭔가 한 줄이라도 쓰지 않을 수 없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물론 연극에서 다루는 성(性)의 문제를 한마디로 간단히 언급하기는 어렵다.
에로티시즘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예술과 외설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는 시비와 논쟁의 대상이 돼왔고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부터가 외설이냐는 문제는 아직도 명확한 구획을 짓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연극의 연극평론가 존 엘솜은 관객을 성(性)적으로 자극하기 위하여 의식적인 노력을 하는 연극을 외설연극으로 규정지은바 있지만 에로티시즘은 시대와 문화,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는 개인에 따라 매우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사회개념이다.
따라서 어떤 영화나 연극이 극중에서 출연배우의 전라장면이 있다고 해서 곧 외설연극이나 음란영화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며 그것이 작품 전체 구도상 불가피한 것이냐 아니면 눈요깃감의 곁다리로 삽입된 것이냐를 따져 봐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이 같은 학문적 또는 전문적인 영역을 떠나 현재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이 어떠냐는 문제일 것 같다.
모든 예술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실 우리사회 일각에는 성(性)을 도구화해서 예술이라는 미명아래 돈벌이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음란비디오, 저질 섹스영화를 제작하고 무대 위에서 예술성보다는 상업적 목적에서 배우의 옷을 벗기는 연극인이 없지 않은 것이다.
상업성에 치우친 저질연극이 동숭동 대학로와 신촌일대의 소극장을 중심으로 계속 번져 나가고 있다는 것은 청소년들의 정서교육이나 건전문화예술의 창달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일부 단체들은 전라의 여성이 인쇄된 입장권이나 ‘극중에 전라의 남녀가 등장한다’는 식의 허위과대 선전문구를 삽입한 포스터 등을 제작하는가 하면 손님을 끌기위한 선정적인 제목을 붙이는 등 부도덕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많은 연극인들이 연극을 대중화하고 관객의 저변층을 확대하려는 충심에서 상업주의적 기법을 다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우리나라의 대중들, 특히 젊은 층들이 아직은 그 예술적 안목이나 수준에서 선진국에 크게 뒤져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대중들이 공연의 예술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선전문구에 현혹돼 벗는 장면이 있는 몇몇 공연에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작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 부인하기 어려운 우리의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오늘날 이 같은 우리사회의 현상을 너무 부정적 시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일제의 억압과 독재권 위주의 체제 아래서 계속 억눌려왔기 때문에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과거의 군사문화 잔재를 털어버리려는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의 하나이며 개방사회로 전환되는 발전과정에서 한번쯤은 거쳐야 할 진통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아직도 유교사상의 도덕적 규범 속에서 영위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감안할 때 작품의 질이 수반되지 않은 벗는 연극은 아무리 순수예술행위라고 그들이 주장한다 해도 우리 사회에서 수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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