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인간의 피를 빨아 먹고 자란다” 하롤드 라스키의 말이다. 끔찍스럽지만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말이다. 민주주의란 인간의 존엄성 수호를 그 근본으로 하는데 오히려 그 피를 빨아먹고 자란다니 아이러니컬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피를 빨아먹고 성장하는 이 이상한 나무를 어렵지 않게 기억에 떠올릴 수 있다. 과거 독재에 항거하여 젊은이들이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으며 피를 흘렸었다. 부정부패에 대항하여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고 피 흘려 희생되었었다. 그러니 뜨거운 피, 그 검붉은 핏자국 위에 ‘민주주의’가 자라온 것이다. 그런데 문민정부 시대의 지금은 어떠한가? 과거 독재나 군정 시대에는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날에도 이 민주주의가 누군가 무고한 이들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서야 되겠는가?
금년은 소위 모자보건법이 제정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1973년 2월28일에 비상 국무회의는 이 법을 제정했다. 헌법의 기능이 중지된 유신체제 하에서 일방적으로 통과된 이 법의 실상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낙태를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강간이나 기형아, 근친상간, 산모의 건강 등의 경우에 제한된 허용이라고는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거의 무제한의 낙태허용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자행되어 왔다.
달리 표현하자면 태아의 인간으로서의 절대적인 가치를 부정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태아는 살해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상황을 위해, 그리고 보다 월등한 인간을 위해 인간이 희생될 수 있고 희생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나치즘적인 사고방식이다.
1823년 히틀러는 연설 중에 이런 말을 하였다.
“유태인들은 확실히 인간부류에 속하지만 그러나 인간은 아니다.” 1942년 유태인들을 생물학적으로 “준인간”, 사람들의 몸에 기생하는 일종의 기생충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결과를 내었는가.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백만의 유태인 학살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나찌즘의 망령은 아직도 오늘의 민주사회에서 활개를 치고 활보하고 있다. 여성해방론자인 글로리아 스테이넌은 태아를 여성의 몸에서 ‘기생적으로 자라는 것’으로 묘사했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미 만연되어 어머니들조차도 태아를 핏덩어리나 인체의 혹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오늘의 수백 수천 여만의 낙태가 소름끼치도록 무자비하게 매년 묵인 합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와 오늘의 낙태 시술대는 무엇이 다른가.
모자보건법이 제정된 이후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려졌고 앞으로도 흘려질 것인가. 소위 문명화되고 민주적이며 생명을 중요시한다는 우리 사회가 태어나지 않는 어린이에게 그토록 잔혹할 수 있는가. 인구보건원 통계에 의하면 낙태 건수가 1960년대 초반에는 10만건, 1970년대 초반에는 31만 건이었다. 1978년 이미 연간 백만의 태아들이 살해되었고 1985년에는 1백50만, 오늘날에는 1백50~1백80만에 이른다고 추정되고 있다.
추측컨대 모자보건법 제정 이후 20년에 걸쳐 무려 2천여만의 생명이 무고하게 피를 흘려 희생된 것이다. 그 덕택에 우리의 나라가 경제적 부흥을 이룬 것인가. 그 덕택에 이미 태어난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행복하게 살게 된 것인가. 과연 앞으로도, 그리고 주님의 심판 대전에서도 그럴 것인가.
한때 유태인이 인간이란 것을 부인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한 독일. 그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지난 5월28일 독일 의회가 1992년에 통과시킨 12주내 임신 중절 허용 법안에 대해 부분적인 위헌 판결을 내렸다. 비록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태아의 생명이 단순히 핏덩어리나 혹이 아닌 인간이란 것을 확실히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시민정신과 법정신은 언제 성숙하여 나치 죽음의 수용소법이나 다를바 없는 모자보건법을 인간의 수치로서 의식할 것인가. 작년에 정부가 입법 예고한 형법 개정안 135조. 근본에 있어서 모자보건법과 별 다를 바 없는 내용의 개정안을 그래도 괜찮은 법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기던 사람이 영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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