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간 동안 나는 밥을 먹으려고 하면 지옥 같았다. 나는 입을 열지 않았고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내 손발을 꼭 잡고 입을 벌려서라도 억지로 밥을 먹이는 등 고역을 치렀다. 강 바울라라는 할머니는 열흘간 우리 집에서 함께 기도하며 함께 식사하고 새벽미사 참례하고, 잠자는 시간 없이 낮에는 십자가 고상을 내 손에 쥐어준 채로 계속 기도해주셨다.
할머니와 주위 분들의 눈물어린 정성때문인지 서서히 이 병은 없어지고 집중이 잘되고 중얼거리지 않게 되었다. 이 병이 곧 마귀병이란다.
우리집은 나와 아버지, 남동생, 여동생 4식구가 있었는데 위로 오빠 둘은 1974년 7월과 12월에 한 해에 둘 다 군입대를 하였고, 아버지는 잔병치레를 많이 하셨고, 항상 어머니가 장사를 하셨다.
그러나 장사하셔도 빚을 지고 겨우 먹고사는 것으로 전전긍긍하다 보니, 어머니는 생각 끝에 남의 집에서 일하시기로 하시고 한 달간 남의 집 가정부로 일하시고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집안일이 궁금하니까 오셨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날 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다투셨다. 처음에는 예사롭지 않게 생각했기에 못들은 척 했지만 뭔가 이상한 것 같아 하루는 자는척 하고 눈감고 두 분이 얘기하시는 것을 들었다. 어머니는 “당신 그럴 수 있는 거예요.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알지, 천벌을 받아! 그럴 수는 없는 거야”하시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뭘 갖고 그러는 건지 얘길 해 봐? 뭘 어쨌다는 거야?”라며 역정을 내셨다. 나도 처음엔 도대체 무슨 얘긴가 이해가 안 갔다. 며칠 뒤에 아버지가 나가고 안계신날 낮에 어머니께 여쭈었더니 “그래! 너 이년 말 잘했다”며 욕설부터 하셨다. 갑작스럽게 그렇게 변하시는 엄마를 보고 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어이가 없었다. 어머니에게 나라는 존재는 항상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저 직장생활이나 해서 돈을 벌어오는 기계취급밖에 받지 못했다. 월급 23만원을 벌기위해 폐결핵에 걸려서도 약만 먹고 직장에 다녔으나 어머니는 늦게 돌아오는 딸의 저녁 한번 제대로 차려주신 적이 없었다.
어쩌다 아버지께서 “고생하고 오는 아이 좀 따뜻하게 해주면 안 돼”라고 역성이라도 들라치면 어머니는 “다 큰 계집애 싸고돌지 말라”하셨다. 그래서 난 늘 어머니께 반감을 갖고 있었다. “당신은 우리 엄마가 아니야. 계모라도 그렇겐 못해”라며 살았다.
그런 와중에 아침이 되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오기 싫은 집으로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던 중 어느 날 성당을 들렀는데 가톨릭 노동청년회 행사에 우연히 참가하게 되어 JOC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 JOC는 이후 나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나를 변화시켰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갖은 모욕과 핍박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 JOC가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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