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안중근 의사가 가톨릭 신자였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또한 그분의 의거가 가톨릭 신앙과는 상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갖고 계셨던 불타는 신앙과 조국애를 본받기 위해,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신 그분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토마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는 말 중에 이보다 강력한 추모의 의미를 지닌 말은 또 없을 것이다. 8월21일 한국 가톨릭 문화사 연구회가 주최한 안중근 의사 추모미사를 집전한 김수환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안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강론의 결론을 내림으로써 한국교회의 근대사 안에서 제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던 안중근 의사의 자리매김을 확고히 했다.
이날 김 추기경은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단순한 살인행위가 아니라 국권회복을 위한 전쟁수호에 있어서 필요한 하나의 전술’이라고 규정, 그동안 살인이라는 틀 속에 묶여있던 안의사의 의거를 정당화 시켜주는 결정적 진단을 내린 것이다.
이를 두고 관계자들은 한국교회가 ‘신앙인 안중근의 신앙을 새롭게 확인’하는 순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곧 ‘안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제거를 살인행위로 단죄했던 당시 교회 장상의 판단이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순간’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한국교회의 평가가 비로소 제자리를 잡았다’는 표현도 가능할 것이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민족운동의 결정적 원천으로 사용했던 민족운동의 선구자, 토마 안중근이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한국교회 안에 정식으로, 새롭게 자리하는 데는 꼭 84년이 걸렸다. 기다리는 세월은 길고 지루했지만 그 기다림은 참으로 크고 소중한 결실을 안겨준 셈이다.
한편 이날 미사 중 김 추기경의 강론은 단순히 신앙인 안의사의 입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치 않았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추기경은 “일제치하 당시 한국교회를 대표하던 어른들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릇된 판단을 내림으로써 여러 가지 과오를 범한데 대해 연대적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추기경은 “당시 제도교회가 올바르게 하느님 백성을 인도하기보다는 한국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친일적 행위가 있었음을 한국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 아파한다”고 고백했다.
김 추기경의 강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모든 과오에 대해서 교회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써 사과를 하라면 사과를 할 것이고 속죄를 해야 된다면 속죄를 하겠다”고 그는 숙연히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심포지엄 내용에 감명을 받았고 김 추기경의 강론에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물론 그 충격은 ‘신선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김 추기경의 강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이 같은 관점에서 한국 가톨릭 문화사 연구회가 마련한 학술 심포지엄, ‘안중근의 신앙과 민족운동’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과거 교회의 과오에 대한 인정과 책임을 한 지체이긴 하지만 현대교회가 나누어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개화기 민족사 안에 자리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위상이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는 첫 걸음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행사는 한국교회의 위상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과 더불어 한국 근대교회사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함께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한국교회는 일제하 암흑기에 민족을 위해 자신을 봉헌한 우수한 우리 신앙 선배들의 행적을 찾는 일에 계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박해시기 순교자들의 순교사 연구에 집중되어온 우리의 편향된 교회사 연구에 새로움을 더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안중근의 신앙적 위상을 재조명하는 일은 거듭 말하거니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격동기 한국교회의 민족사적 책임과 역할을 규명하는 일과 상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에는 반드시 함께 짚어야만 하는 문제가 있다. 자칫 제도교회가 선택했던 부분적 오류만으로 일제하 한국교회 전체를 평가하는 또 다른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제도교회가 잘못된 판단으로 민족을 위한 선택을 하지 못했다면 민족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무수한 ‘하느님 백성의 일원들’을 간과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뜻이다. 바로 옆에서 거듭 강조한 부분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그동안 표현을 유보해왔던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신앙과 민족애의 조화가 이루어낸 ‘민족운동의 중대한 결단’임을 공식 천명했다. 그 일은 우리 교회가, 우리 신자들이 아무런 걸림돌 없이 민족 복음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사실을 엄숙히 선언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에게 남은 숙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이 시대의 안중근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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