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TK사단의 황태자로 군림하며 ‘차세대의 떠오르는 태양’으로 까지 추앙받았던 박철언씨는 세무사찰을 중지시켜 달라는 우리나라 슬롯머신 대부로부터 5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게 빈정거리며 기자회견을 하면서 소리쳤다.
“새벽이 왔다 하면서 왜 닭의 모가지는 비틉니까” 그러고는 특유의 웃음을 띠며 그는 잘못한 일이 없는, 정치보복을 당한 사람처럼 끌려갔다.
이 말은 과거 김영삼 대통령이 야당시절 군사정권에 저항하며 한 “닭의 모자기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을 비꼬는 것이기 때문에 이 광경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본 국민들은 권력의 허무함과 정치세계의 냉혹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6공 때 YS에게 버릇없이 굴더니 결국 당하고 마는 군’ ‘구속이라니, 저건 6공에 대한 정치보복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까불더니 잘됐어’로 대개의 사람들은 생각의 마무리를 지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국민에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부정이 들통 나 잡혀가기만 하면 괜히 흥분하며 좋아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 버릇에 대해서 사회심리학자들은 핍박을 당해온 우리 국민들의 일종의 한(恨)풀이에서 오는 보상심리 같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남이 잘되는 것에 대해 시기하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우리 국민성이 고쳐야할 또 하나의 ‘고질병’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 예부터 우리 국민처럼 복수를 미덕으로 삼는 나라도 없다. 복수를 하기 위해 일생동안 원수를 찾아 반드시 보복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야기로 꾸며진 영화나 소설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인데 그런 내용으로 꾸며져야 유익하고 좋은 작품을 감상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이지, 그동안 우리 국민은 5·16군사정권 이후 30여 년 동안 총칼에 눌러 갖은 고난과 핍박 속에 지내왔다.
그건 60~70년대를 거쳐 오면서 유신헌법으로 영구통치를 하려했던 박정희 정권 때도 그러했고, 권력을 잡기위해 수많은 광주시민들을 살상하고 정권을 차지했던 전두환 5공 정권 때도 그러했으며, 온갖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쇼를 부리며 6·29선언으로 정권을 쥐었던 노태우 6공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세월로 30여 년을 군사정권에 길들여 왔으니 대다수 국민들은 우리사회는 정의(正義)보다는 불의(不義)가 판을 치게 됐고 권력을 가진 자는 군림하고 돈이면 무엇이라도 안되는 게 없다는 세상을 살아 왔으므로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불의에 영합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러다보니 한탕주의가 성행하게 됐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은 바보취급 밖에 받지 못했으니 윤리와 도덕을 아무리 소리쳐 보았자 어찌 통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한국병’을 치료하겠다고 출범한 김영삼 문민정부는 썩어빠진 사회 구석구석을 지금 대청소하기 시작했지만 국민들의 뇌리에는 야당시절 핍박받았던 복수의 일종으로 개혁에 대해 바라다보고 있으니 우리 국민들의 도덕적 불감증은 실로 놀라우리만큼 심각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군대의 수많은 별들이 떨어져 똥별이 되고, 범죄자들의 비호세력이 돼버린 검찰 고위층, 아직도 정부의 눈치나 살피며 알아서 기고 있는 언론사. 혹시라도 벼락이 나에게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몸조심만 일삼는 공직자들. 지금 우리사회가 온통 냉가슴 앓듯 소리 없는 신음을 하며 문민정부가 하는 대로 따라가면서 구경만 하고 있는 게 오늘 이 나라의 현실이다.
하루아침에 각종 제도가 바뀌어도 별다른 비판 한마디 못하고 정치권 일부에선 문민독재라 하지만 으레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런 소릴 한다고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국민들.
잘 잘못을 가려내지 못하는 동물과 같고, 어떤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 짓지 못하는 허수아비라 해도 무언(無言)으로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오늘의 우리사회를 진단할 수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개혁을 단행한 김 대통령의 국민 지지도가 92%라는 사실만 보아도 우리사회는 비정상임을 잘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절대치에 다다른 국민의 지지도는 매우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국민과의 인기 영합만으로 한 나라의 국정을 거머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 종교계는 국민의 참다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참 회개운동을 지금 펼쳐야 할 때라고 본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무엇인지를 국민 모두에게 심어줄 좋은 기회가 바로 지금일 것이다.
구경꾼만 있는 나라. 한 사람의 인기상승에 발맞춰 굿만 보고 구경만 하라는 나라. 이건 진정한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국민이 주인이 되고, 국민에게 주권이 주어진 나라.
그런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선 신한국(新韓國)이 걸어가고 있는 이 고통의 길에 국민 스스로가 이젠 발 벗고 나서야 할 때다.
지금은 숲이 있어도, 숲을 보지 못하는 세상이므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