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부터선가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오락성향의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타임 킬러’(Time Killer) 혹은 ‘킬링 타임’(Killing Time)이라는 거친 표현을 쉽게 주고받는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런가하면 얼마 전에는 ‘하루 TV안보기’ 운동이 펼쳐진 적도 있었다. 또 비디오 부문에서는 그것의 사회적 폐해를 들어 지금도 여러 사회단체에서 선도의 처방을 두고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타임 킬러라는 말은 영화를 봄으로써 쉽게 시간을 잊어먹는다는 표현일게고 TV안보기는 조잡(粗雜)한 프로에 대한 시청자의 저항의 수단일 것이며 비디오의 경우도 역시 저질프로의 양적 확산과 그 사회적 각성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적 산물이자 또 영상매체(映像媒體)이다. 그리고 앞에 소개한 사례들은 창작품에 대한 향수태도(享受熊度) 내지는 영상매체에 대한 수용에 따른 문제들이다. 어떤 창작품이던 표현매체이던 간에 그것을 수용하는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 오늘의 시류에 비추어 볼 때 이들 표현매체에 대한 수용자적 측면에서의 허점이나 문제점들은 없는 것일까? 어떤 예술이던 표현매체이던, 그것은 특수한 장르나 분야를 제외하고 그 시대정신의 산물임은 물론이다.
그럼으로 향수자 내지 수용자는 그들 창작물에 대한 간접적인 참여자가 된다. 이 말은 대중예술 혹은 매스미디어에 관한한 그 수용자도 공동운명체적 책무가 따른다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처럼 영상을 기본으로 한 영화, TV, 비디오 등이 생활 깊숙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시대에는 그 상관관계로 말미암은 책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요청된다고 하겠다. 여기에 곧 다가올 케이블 TV시대를 함께 생각하면 그 심각성은 크게 증대되리라 예상된다.
영상시대가 도래한지는 이미 오래전 일이다. 더구나 오늘에 와서는 위성TV 케이블TV마저 합세해서 복합 영상매체시대라 일컫는다. 그럼 복합영상매체시대의 위력이란 또 어떤 것일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론 형성력(世論形成力)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여가선용의 주종을 이룰 때만해도 그것은 시간성(時間性)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를테면 레닌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나 히틀러가 나치즘을 스크린을 통해 떠벌릴 때만해도 영화관이라는 한정된 시간도 공간 안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역사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영화의 가공할 세론 형성력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영화 외에 TV를 비롯한 전파매체가 시·공간의 제약 없이 거의 24시간 공공장소, 산업현장 그리고 가정의 울타리를 뚫고 무차별적으로 정보화시대의 바람직한 멧센저로 혹은 다르게는 정신문화를 교란하는 폭한(暴漢)으로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문명이 영상시대를 배태(胚胎)하고 있게 했지만 오늘에 와서는 그 실익(實益)보다 해악에 대해 더 아우성이니 문명이란 항상 아이러니를 동반하는가 보다. 그래서 영상시대를 살아가는 현금에 와서는 이제 그것은 단순한 정보제공이나 엔터테인먼트의 기능을 넘어서서 생리학의 대상, 사회학의 대상, 심리학의 대상, 현대예술 일반의 문제를 포함, 총체적인 접점의 관점에서 규명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럼 비판적인 의미에서 이들 매체에 대한 대처방안은 어떤 것일까? 전통예술이자 무대예술인 연극의 경우를 알아본다. 연극의 3대 구성요소라면 대개 희곡·배우·관객을 꼽는 것이 통설로 돼있다. 여기에서 새삼 의미를 부여한다면 관객의 자리일 것이다. 사실 관객 없는 연극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의 관객은 단순한 구경꾼의 역할을 넘어, 특히 오늘에 와서는 무대구성의 직접적인 요소로 역할기능을 맡고 있기조차 하다. 연극이 탄생한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 까지 관객의 관극태도 혹은 그 반응에 따라 연극의 생명이 가늠되기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비해 영화의 관객과 TV나 비디오의 경우는 어떤 상관관계의 반응일까? 한말로 연극과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안이주의적 관념과 감상행위에 중독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스크린을 매개체로 또 TV나 비디오는 브라운관을 통해 만나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관자적 관념과 수용자세가 타임 킬러란 자조적(自嘲的)인 말 따위로 영화판도를 날로 비생산적인 추세로 몰고 가도록 만들고 혹은 TV안보기 운동을 전개하도록 작용한 근원적인 요인임을 하나같이 자각하고 자성해야할 것이다. 그 처방은 간단하다. 좋지 않은 영화는 선택하지 말고 조합한 TV프로나 비디오는 거부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획일적이 아닌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들 불청객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자세와 바른 인식을 갖추었을 때 이미 도래하고 있는 복합영상매체 시대를 스스럼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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