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집에 가세요? 아줌마 집에 놀러가고 싶은데” 미사를 마치고 1학기 과제가 밀려 부지런히 오고 있는데 나무 그늘 의자에 앉아있던 복사 어린이가 한 말이다. “그래 같이 가자”하고 내려오는데 꼬마 어린이 셋, 남자 어린이 둘이 같이 따라온다. 이럴 때에는 성당 근처에 집이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방학도 하고 오랜만에 집에 온 작은 친구들이랑 빵이나 구워줄까 하다가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아이들은 공부 이야기다. 학원에 가야하고 누구는 과외를 하고 6살짜리 꼬마가 영어를 배운다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국교2년 어린이가 “시험을 보아서 하나 틀리면 아빠한테 종아리를 한대 맞아야 해요. 한 문제에 한 대!”하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어머 어떡하니? 틀리면 네가 더 속상할 텐데. 엄마 아빠들이 이런 마음을 알아주시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말하니 국교3년 아이가 “시험이 없었으면 좋겠어요”한다.
언젠가 상담실 당번일 때 국교1학년 어린이가 “저 선생님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나요?”하는데 목소리가 하도 예쁘고 귀여워서 몇 학년인데 그렇게 공부 걱정을 하느냐고 했더니 국교 1학년인데 조금이라도 점수가 좋지 않으면 엄마한테 혼난다고 한다.
배우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야단맞지 말자는 마음이 더 많은 것 같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천진난만하게 뛰어 놀며 자라야 할 아이들이 공부걱정, 시험걱정에 얽매여서 마치 엉겅퀴 속에서 이리 찔리고 저리 찔리며 자라는 것 같다.
실업고 학생들을 상담하다 보면 모든 사고, 비행의 동기가 대부분 공부다. 나도 잘하고 싶고 선생님께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단다. 그런데 공부가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한다.
어떤 중 3학생은 자기는 만드는 것이 재미있고 기계조립 등 이런 것이 좋은데 아빠 엄마는 무조건 인문계로 진학해서 대학에 가라고 한다면서 집을 나가고 싶다고 한다. 집에서는 공부 못한다고 구박이고 학교에 오면 잘 하는 아이들의 들러리가 되어 찬밥 신세다. 그러다 보니 답답한 가슴을 마약, 오락실, 담배, 술 등 어른들의 눈을 속여 가며 스스로 자학을 하고 있다. 상담을 하는데 “전 좋은데 갔다 온 놈이에요. 더러운 놈이에요”하는 학생서 심지어 별칭을 ‘더러운 천지’라고까지 한 학생도 있었다.
“우리가 실업고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공돌이밖에 더 되나요. 전문대라도 나와야 사람대우 받는 세상인데요”라고 말하는 한 학생은 잘 아는 형이 실업고를 졸업해서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이번 책임자는 저 형이 될 것이라 주변에서도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본사에서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짧은 공대 출신인 사람이 이미 내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형이 술에 만취되어 학력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자신들은 설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어른은 아이들을 마음대로 할 권리가 없다고 본다. 어디를 가다가 보면 아이들을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어른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예수님 어떡해요, 도와주세요’ 할뿐이다. 아이들은 하느님의 사랑의 결실로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정원사일 뿐이다. 정원사가 정성스레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잡초를 뽑아가면서 정성을 들일 때, 하늘에서 빛의 은총과 공기 바람 등으로 아름드리나무가 커 갈 수 있듯이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눈높이 사랑을 해주었으면 한다.
유아: 웃어주면서 어루만지고 쓰다듬어 주는 것.
유치원: 어머 그랬니, 그랬구나. 관심으로 함께 있어주는 것.
국교: 그랬어, 그랬구나. 나는 못했는데, 너는 잘 하는구나(내가 할 수 있고 잘해도 상대인 아이에게 큰 용기를 주기 위해서)
중·고: 그래 참 잘했다. 멋있구나 정말 멋있다. 등
상담방법에는 훈시, 지시, 격려 상담 등이 있는데, 이 격려 상담을 나는 명약으로 사용한다. 칭찬을 잘못하면 아부성으로 들리지만 격려는 단백한 맛과 친근감, 공감 형성 속에 부담 없이 주고 받을 수 있다.
나는 학생들과 그룹상담을 할 때 ‘손’ 이야기를 많이 한다. 다섯 손가락이 모두 자기 역할을 하듯 이렇게 하느님은 모두에게 자기 나름대로 소질과 능력을 주신 것이다.
나의 조카는 학력고사 2백점을 받은 적이 없었다. 오죽하면 학력고사에 떨어지면 전문대도 못 가니까 직업훈련소에 가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조카는 만들기를 잘하고 컴퓨터 같은 기계 작동에 아주 뛰어난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전자제품, 시계 같은 것이 고장이 나거나 이상이 있으면 잘 고쳐 주기도 하였다. 공부는 잘 못하지만 항상 열심히 노력하고 착해서, 외모와 소질 등으로 칭찬과 격려를 해주곤 했다.
“○○이는 참 잘 생겼다. 특히 눈썹이 너무 멋있어. 여학생들이 잘 따르겠구나”하면서 외모와 성실 참함 등을 말해주기도 하고 어쩌다 탈수기에 있는 빨래를 널어 주게 되면 고맙다는 말을 꼭 해주곤 하였다. 6살에 나와 인연이 되어 같이 살면서 착하게 잘 살아 준 것이 대견하고 고맙기만 하다.
하느님은 얼마나 공정하신가! 전교 몇 등을 하던 아들놈은 어느 날 학생 서클, 민주화 이념에 빠져 본고사에서 낙방을 하고, 조카 녀석은 무사히 합격을 하였다. 그것도 본인이가고 싶어하던 기계공학과에!. 요사이 성적이 나왔는데 F가 나올까 보아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잘 해주었다. 지금도 가끔 장거리 전화로 “작은 엄마 고민이 있는데요”하는 녀석이 대견하고, 10여 년 세월이 쉽지는 않았지만 가슴 뿌듯하다.
결국 인간은 사랑과 정성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 나머지는 하느님의 손끝 안에 그분의 섭리 안에 맡겨 둘 뿐인 우리들이 아닌가?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이 한 여름, 숲이 우거진 계곡의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그네들의 삶의 청사진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해 줄 수는 없을까?
“이름 없는 이 땅의 수많은 순교 성인 성녀들이시여 우리의 아이들,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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