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하찮은 일이지만, 그때로선 퍽 괴로운 일이었다. 주부인 주제에 무슨 패션모델이랍시고 대담하게 옷을 입느냐, 제까짓 게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목에 힘주고 다니느냐며 눈에 거슬린다고 하고 또 다른 이웃은 비싼 옷이 아니라도 센스 있게 연출할 줄 아는 진짜 멋쟁이라고도 하였다. 묘하게도 나는 도마 위에 오른 생선이었고 나로 인하여 어이없게도 사람들은 말다툼까지 하였다는 것이다.
그때, 열사람 중에 여덟이 나를 좋아하면 나는 좋은 사람이고 여덟이 나를 나쁘다하면 나는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살았던 그곳 단층 아파트 사람들은 대다수 부업이라도 해서 돈벌이를 하고 싶어하였다. 그런 만큼 그들보다 조금 편해 보이는 내가 고와 보일리가 없었을 것이다. 나로 인하여 가슴 아픈 이가 있다면 그것은 내 탓이다.
나는 내 주관이나 개성을 조금씩 접어두고, 옷차림도 행동도 조심하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다. 그것이 나에게는 인격수양의 과정이며 인간수업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스승께서 내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신 적이 있다. 수필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느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 분의 속뜻이 있음에도 나는 엉뚱한 대답을 하였다. 순간, 그 분의 신기(神氣)에 가까운 눈빛은 내 무력감과 오만을 꾸짖는 듯 하더니 이내 긴 침묵이었다. 얼마 후, 수필을 쓰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며 수필에 관한 1백여 권의 책을 내 자동차에 실어 주셨다. 당신이 아끼던 그 책을 “누굴 줄까 생각하다가 네가 생각났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사명감을 가져라”하며 다짐처럼 말씀하셨다. 나는 스승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못내 죄스러웠고, 한편 어깨가 무거웠다. 글다운 글을 써야 한다는 책임의식도 있거니와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는 강의 시간에 들은 그분의 말씀이 내 가슴속에 문신처럼 남아있어서 이기도 했다. 나는 인간이기 위하여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까.
요 근래에 부쩍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나 상처가 깊다. 이를 오래도록 털어버리지 못하는 나를 안타까워하는 이웃들은 보기보다 소심하고 약하다고 내게 말한다. 나도 예전처럼 그들을 쉽게 무시하고 잊어버리면 마음이 편할텐데 그럴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용서했을 때,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때 그것이 진정한 용서와 사랑이 된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을 되새기면서 나의 인간수업은 언제나 끝이 나려는지 아쉽고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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