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임에서 어떤 분이 며느리감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몇 가지 조건을 내세웠는데 그 중 하나는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일 것’이었다. 우리가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가까운 친척 중에 신자를 며느리로 맞이한 집이 있는데 서로 맞지 않아서 어려워하는걸 보았어요. 우선 그 며느리는 종교를 위해 바치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다른 가족들이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새벽기도 성경공부 예배 등으로 늘 집을 비우고 제삿날에는 아예 시댁에 안 오려 하고 그러다보니 시댁식구들 중에서 외톨이가 되고 말았어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자기 자신은 홀로 있어도 신앙 속에서 늘 행복한 모양이지만 그러다가 부부사이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군요. 우리 가족은 되도록 착하게 살려는 사람들이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자기종교 안에서만 살려고 하는 사람과 가족이 된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았어요”
뜻밖에도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동의하고 자신이 겪은 비슷한 경험들을 들려주었다. 만날 때마다 자기종교 이야기만 하고 너무 열렬하게 전도를 하고 다른 종교를 혹독하게 평가절하하고 가족을 돌보지 않은 채 종교에만 몰두하고 세속적인 욕심이 철철 넘치는 기도를 한다는 등 여러 종교의 신도들에 대해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가족 친척 직장동료 친구사이에 종교가 다를 때 어느 정도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내가 다닌 중·고·대학은 모두 개신교 학교였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종교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을 뿐 신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어린 시절의 ‘종교적인 분위기’가 싹이 터서 종교를 갖게 되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종교를 갖게 된 친구들은 대부분 마음이 깊어져서 동년배인데도 언니나 어머니 같은 푸근한 느낌을 주었으나,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어떤 친구는 신자가 된 후 단 30분도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게 변해버렸다. 그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신앙이외의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다른 친구들은 끝없이 되풀이되는 그의 종교이야기를 견디지 못했다. 수십년 친구들인 우리는 만나면 서먹서먹해 졌다. 그는 어느덧 다른 친구들이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친구가 됐다.
우리나라의 1970년대, 80년대의 한 특징은 ‘종교열풍의 시대’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고 지역과 계층의 이동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던 일대 변혁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몰입하게 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인들은 그 시기에 경제발전을 통해 성취감을 흠뻑 맛보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극심한 경쟁 갈등 긴장 좌절로 고통을 겪었고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주는 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여러 종교가 각기 집계한 신자 숫자를 합치면 남한인구 5천만을 능가한다는 말이 나올만큼 각 종교들은 이 시기에 크게 교세를 키웠다. 특히 어떤 종교의 교세신장은 경이로웠다. 그러나 크게 늘어난 신앙인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으며 날로 각박해지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얼마나 순화시켰는지는 의심스럽다. 오히려 뜻있는 사람들은 이 맹렬한 종교적 에너지가 인간과 사회를 파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품었고 그러한 우려는 일부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휴거소송 같은 것은 드러난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많은 신앙인들은 배타적이고 집단이기주의에 빠져있고, 감옥처럼 문을 튼튼하게 닫은 신앙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 이웃을 바라볼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종교인들이 늘어날수록 종교인에 대한 이미지는 나빠지고 있다. 어떤 신앙인들은 이웃에게 감동을 주기보다 부담과 혐오감을 주고 있다.
여러 종교의 성직자들과 교인들은 ‘열에 들뜬 신앙인’들을 바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신자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신앙의 열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이다. “한국의 종교적 에너지가 어떻게 폭발할지 무서워요”라든가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은 힘든 일이예요”라는 말이 일반인들 입에서 자주 나오는 것은 결국 종교인들의 책임이다.
우리나라에 종교인구가 크게 늘어났다면 우리사회의 총체적 사랑의 무게도 늘어났어야 한다. 종교는 우리들 사이를 갈라놓지 말고, 따뜻하게 조화시켜야 한다. 종교인이든 아니든 개인과 사회의 종교적 에너지가 어떻게 축적돼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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