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톨릭 문화사 연구회가 주최한 안중근 학술 심포지엄의 계기가 되어 일간신문에서는 그에 관한 박스기사가 실리고 가톨릭 신문에서도 그에 관한 특별대담과 학술 심포지엄에서의 논문이 연재됐다.
안중근 의사-우리 민족은 사실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하여 너무나 모른채 그를 과소 평가해 왔다. 더구나 그가 그 시절에 천주교 신자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이제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행적은 이토를 암살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사형을 당하였으며, 사형을 당하기 직전까지 감옥 속에서도 의연하고 꿋꿋한 기상을 보여 교도관들을 감동시켰다는 것이며, 그가 붓으로 남긴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등과 같은 민족과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휘호와 그 옆에 무명지가 잘린 왼손바닥으로 찍은 낙관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에 관한 각종 기사와 전기를 읽어보니 그는 일찍이 문명을 깨치고 학교를 세워 이를 운영하였으며, 국내에서의 애국계몽운동에 한계를 느끼자 간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그 당시에 그는 이미 천주교도로서의 윤리의식과 신앙심으로 충만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학교운영과 의병재기가 여의치 못하자 1909년에 들어서면서 동지들과 함께 구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것을 다짐하고 이토를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다음 거사를 단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거사 직전에 탄피에 십자표시를 새겨 넣으면서 이토의 제거를 충심으로 기원하고, 또한 이토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십자가성호를 긋고 대한만세를 불렀으며, 체포된 직후 자신의 신분을 ‘천주교인 안응칠’(안응칠은 그의 어렸을 때 이름이다)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사형집행일인 1910년 3월26일 오전 9시 어머니가 손수 지어준 새 한복을 입고 두 아우들에게 천당에 가서 독립만세를 부르겠다고 유언하였으며, 10시 교수대의 대상에 오른 안의사는 3분 동안 신에게 기도하였는데, 감옥묘지에 매장될 때 그의 영구 양편에는 그리스도상이 얹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의 그가 애국심과 신앙심에 충만해 있었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전쟁 중에 있는 군인의 신분인 그로서 그것은 살인이 아니며 정당행위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을, 그의 재판과정에서의 진술을 빌리지 않고도 넉넉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그는 사형 집행의 날을 기다리면서도 매일같이 책을 읽고 그를 존경하는 형리와 취조관들에게도 글을 써 주었는데 그의 짧은 일생동안 2백 폭에 가까운 글씨와 「동양 평화론」이라는 미완성의 논문을 남겼다. 31세를 일기로 영웅적인 삶을 마감한 그의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청나라의 정치가인 위안스카이(袁世凱)는 그의 영전에 조시를 바쳐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금까지 그를 과소평가하여 왔는가. 한국 가톨릭 문화사 연구회 회장인 노길명 교수는 교회사적의 측면에서 이는 한국 천주교의 박해시대가 끝난 후의 사건으로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고, 그의 처단행위는 가톨릭 신앙에 위배된다는 측면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안의사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의 신앙을 모르는 이상, 그에 대한 과소평가는 여전히 이어질 것이고 그의 우국충정에 대한 합당한 평가와 대우가 이루어질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다.
우리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과 한글을 창제한 영명한 군주 세종대왕-우리의 역사의식 속에 우뚝 솟아 있는 민족의 두 영웅을 제외하고는 민족의 자존심이자 정신적 지주로 남아있는 성인은 별로 없다. 민족과 겨레를 위하여 적을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은 피압박자의 합당한 권리요, 당연시되는 의무이다.
이제 그의 생애와 사상, 천주교적 신앙은 역사적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에 무력으로 투신하여 대항한 사건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정당한 무력의 행사는 역사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야 하고 그는 민족의 영웅으로 승격되어야 한다. 교회에서도 그의 죽음은 단순한 치명이 아니라 쓰러져가는 대한제국을 위한 순국이요, 신앙심으로 무장한 아름다운 순교라 할 수 있다.
천주교가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박해받던 상황과는 또 다른 당시의 풍전등화같던 조국의 운명 앞에서 그의 천주교적 신앙심은 당시 주교를 비롯한 외방선교사들의 우리 역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그에 기한 천주교적 교리의 수준을 넘어선 차원 높은 것이라고 극찬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시도하여야 한다. 그의 죽음은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추앙되어야 하고 그는 민족의 영웅으로 추대되어야 한다. 외국에 안치되어 있는 독립열사들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는 작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나라의 민족정기와 미래의 주인인 후세들을 위하여 독립운동가들의 생애를 재조명하고 고양시키는 일일 것이다.
한편, 천주교회에서 안의사를 향한 추모의 기도와 미사지향이 거국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분명히 그는 언젠가 우리 앞에 다시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에게 인생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가르쳐 주고, 모든 천주교인들에게는 참된신앙이 무엇이며 그 신앙은 행동으로서 검증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선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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