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중근을 읽게 된 동기는 문화 체육부에서 제정한 8월의 문화인물이 바로 안중근이라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듣게 된 후 부터였다. 그리고 해방을 맞이한 8월 달에 ‘국가 보훈’분야의 대표적 인물로 선정되었다고 덧붙이시며 아버지께서 이 책을 나에게 권해주셨기 때문이다.
1909년이 되자 안중근은 그가 모은 열두 명의 동지들과 노우키에프스크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새해를 맞아 조국 광복을 위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동지들과의 굳는 약속의 표시로 조국을 다시 찾을 때까지 조국광복의 뜻을 변치말자며 왼손 무명지 첫 관절 부분을 칼로 끊었다. 그리고 늘 가슴에 품고 있던 태극기를 꺼내어 붉은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고 쓰고 그 아래에 ‘안중근’이라고 썼다. 그러자 거기에 참석한 모든 동지들도 차례로 왼손 무명지를 끊었다.
10월21일. 안중근과 우덕순은 동지들을 떠나 하얼빈으로 갔다. 10월25일 오후 1시 특별열차로 이토 히로부미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은 러시아 여관에서,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각각 거사하기로 했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리고 있던 안중근은 차디찬 권총을 계속 만졌다. 권총엔 총알은 일곱발이 들어 있었다.
드디어 아홉시가 되자 특별열차가 도착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모습이 보였다. 러시아군, 청국군의 군악대 및 장대가 웅장했다. 안중근은 러시아군을 따라 바짝 뒤쫓았다. 그리고 뒤돌아서 걸어오는 노인(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재빠르게 총 네발을 쏘았다. 동시에 그는 가장 위용있어 보이는 일본인을 향해 두발을 쏘았다. 그런 뒤에 안의사는 가슴에 품고 있었던 태극기를 꺼내어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다. 러시아 헌병들은 안중근을 덮치려 달려들었다. 안중근은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계속 외쳤다. 하얼빈역에서 울린 그 총소리는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을 꿰뚫으면서 동시에 2천만 민족을 잠에서 일깨우는 위대한 소리였다.
나는 이 책에서 아주 훌륭한 교훈을 얻었다. 첫째, 안중근의 애국심이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쏜 네발의 총알 중 세발은 갈비뼈사이의 배에 정확하게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러시아 헌병에게 잡히면서도 독립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마음가짐, 또 손가락을 잘라 맹세했던 대한독립, 그것이 바로 안중근의 투철한 애국심이다. 우리는 이 애국심을 조금이나마 배우려는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둘째, 신앙심 깊은 천주교 신자이다. 안중근은 아내(김 마리아)와 함께 천주교 신자였다. 홍 신부에게 영세를 받은 뒤 토마스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난 안의사는 홍 신부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애국심 못지않은 신앙심 깊은 천주교 신자였던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도 안중근 의사처럼 애국심이 강하고 신앙심에 깊은 천주교 신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또 이 같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다른 분들의 일생도 살펴보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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