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에 진을 치고 대치상태에 있는 병사들, 한바탕 총격이 오간 뒤라 잠깐 정적이 감돌기만 할뿐 교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대 한쪽의 병사들이 건너편을 향해 일제히 “‘무하마드’야!”하고 부른다. 물론 몸은 구릉에 숨긴 채로다. 그러자 반대편 병사가운데 절반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불쑥 일어선다. “왜?”하면서. 다음, 그들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총알세례를 받고 쓰러진다.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약이 오른 반대편 병사들이 건너편을 향해 ‘야곱’을 합창한다. 아무 반응이 없자 또 야곱을 부른다. 그래도 대답이 없고 이들이 다시 한 번 야곱을 부르려는 순간 반대편 병사들이 “야곱을 찾은 사람이 누구냐”고 소리친다. 역시 몸은 구릉에 감춘채로다. 야곱을 부르던 병사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내가 불렀다. 왜!”하고 응답하면서. 다시 총알세례, 일어섰던 나머지 50%의 병사들마저 쓰러지고 만다.
이스라엘과 아랍, 정확히는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 군인과의 전쟁을 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우스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앞의 이야기다. ‘무하마드’는 아랍계에서 가장 흔한 이름에 속한다. 거짓말을 보태면 1백명당 50명이 무하드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반대로 ‘야곱’은 이스라엘이 즐겨 사용하는 이름이다. 길 가다 “‘야곱’아!”하고 부르면 7, 8명쯤은 뒤를 돌아다본다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이 있을 정도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김 사장님!’과 비유가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수적으로 봐서 상대적 열세에 있는 이스라엘이 아랍을 상대로 싸우면서도 끝내 땅을 빼앗기지 않고 버티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빗대어 말하는 이 우스개는 그러나 ‘독한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신의 자손’임을 내세우며 팔레스타인의 땅을 힘으로 차지한 이스라엘 민족, 이들과 대항해 빼앗긴 땅을 찾으려는 팔레스타인 민족, 역사 안에서 숙명처럼 마주치는 이들의 운명은 참으로 질기기 짝이 없다.
이 두 민족이 손을 잡았다는 최근의 외신은 참으로 감격적이다. 직접적인 적대국으로 싸워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간의 악수가 오랜 적대국, 요르단과 시리아 등의 승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속보 역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제1의 화약고로써 세계의 이목을 끌어왔고 가슴을 졸이게 해 온 중동의 해빙무드는 세계인의 환호와 지지를 자아내기에 충분한지도 모른다. 더구나 걸프전의 굉음과 검은 연기가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생생한 지금, 중동의 해빙을 향한 이들의 몸짓과 그 결실들은 더욱 값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과 PLO간의 상호승인 협정은 중동평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동평화는 곧 세계평화를 상징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중동의 평화를 향한 이들의 첫번째 결실은 풀어내야 할 숱한 어려움을 함께 가지고 있다. 폭력투쟁세력으로 불리는 강경노선 하마스파의 반발 등 팔레스타인내의 내분을 미리부터 점치는 사람들도 있으며 이들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언론의 진단이 낙관 쪽으로 기울수가 없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협정에서 팔레스타인 쪽은 점령당한 ‘예리고’나 ‘가자지구’를 ‘독립’이 아닌 ‘자치권’으로 되돌려 받았을 뿐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상호승인 협정을 굴욕적 외교의 결산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도 이스라엘과 PLO간의 상호승인 협정과 이를 토대로 한 중동의 평화정착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서는 곤란하다. 이번 협정은 평화적 공존을 통한 중동 평화의 ‘첫 발’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모든 것을 한 번에 얻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양 진영에 있다면 그들에게 ‘한술 밥에 배부르랴’는 우리 속담을 들려주고 싶다.
이번 협정은 이스라엘 여행자들에게도 신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짐은 스스로 쌌는가” “짐을 혼자 내버려두지는 않았는가” “혹시 선물을 받은 것은 없는가”로 시작되는 이스라엘 출입국 절차는 이스라엘을 여행한 적이 있는 사람들에겐 등골 오싹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룹여행이 아닐 경우 팬티 바람으로 이른바 ‘센터’를 당하기 예사였던 엄청난 불쾌감은 생존을 위한 한 민족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수용하기엔 분명 기분 나쁜 경험이 아닐 수가 없었다.
중동의 평화무드는 설사 어떤 걸림돌이 있다고 해도 우리에겐 부럽기만 한 자극이다. 이스라엘과 PLO의 관계 개선은 서두를 것은 없지만 게을리해서도 안 되는 우리의 통일 노력을 되돌아보게 한다. 무엇이 우리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지 한번쯤 깊은 생각을 해보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이번 이스라엘과 PLO 상호승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북한과의 사이에 깊게 골을 채우는 작업부터 배워야만 할 것이다. 이민족인 그들이 해낸 평화의 악수를 하나의 민족인 우리가 못한대서야 말이 되는 얘긴가.
그 시간은 짧을수록 좋고 그 노력은 진지할수록 좋다.
<취재국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