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誠)은 하늘의 도(道)요, 성실하려 함은 인간의 도(道)다” 공자님의 말씀이다. 이 문구를 떠올릴 때면 먼저 부끄러움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한문 성(誠)자를 풀어보면 말(言)을 이루다(成)는 뜻이 담겨 있다. 늘 말에 책임을 지고,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비범한 일이다. 그래서 언행일치는 하늘의 도에 비기는 것일까. 비록 하늘의 도에 거리가 멀더라도 꾸준히 애쓰는 것이 성실하려 함이 아니겠는가. 어떻든 진리에 순응하고 성실히 애쓰는 것이 인간다움이고 마땅히 가야할 길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5년 전의 일이다. 새로 부임한 본당에서 한 달 정도 지낸 뒤에 산부인과 의사부부가 저녁 늦게 사제관을 찾아왔다. 강론 때 낙태에 관한 내용을 듣고 고민하다가 상담을 하러 온 것이었다. 양심과 현실의 갈등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을 듣고 싶습니까? 아니면 그저 위로를 받고 싶습니까?”라는 나의 질문에 부부는 전자를 택하였다. “그러면 내일부터 다시는 낙태시술을 하지마십시오” 쉬운일이 아니다. 그래도 부부가 굳게 다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뒤 일주일만에 다시 원상복귀, 수입이 10분의 1로 줄어서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결심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므로 이해가 간다.
감사스러운 것은 일년 후, 낙태시술에 손을 씻었고 지금은 소아과만을 보고 있다고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러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리고 재물의 유혹을 계속 물리치기 위한 노력이 어찌 적었겠는가.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는지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 작년 낙태반대 1백만 서명운동을 하면서 그 의사부부가 생각날 때가 많았는데 수천여 개의 산부인과 의사들을 생각할 때와는 달리 마음이 가볍게 느껴졌었다. 인간다우려면 신앙인다우려면 결단의 용기, 버림의 아픔도 따라오고 인간의 도는 마땅히 그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인들이 엄숙히 서약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내용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명예를 걸고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존중하겠다는 서약.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더없이 존중하겠노라… 나는 자유의사로서 나의 명예를 걸고 위의 서약을 하노라’ 매우 인간적이고 신앙적인 서약이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BC 460~379)는 고대 희랍의 의학자들 중 가장 유명하다. 그는 이집트와 바빌론에서 오래전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의술을 의학으로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의료인들의 윤리적 규범을 남겼다. 그가 지었다고 하는 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과대학생들이 졸업식 때 장엄하게 서약하는 것으로써 의술을 펴는 의료인들의 명예로운 규범이 되어왔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생명의 출산을 도와야 할 의료인들이 오히려 생명을 죽이고 있는 현상이다. 소위 인공유산을 너무나 가볍게 취급하여 실시하고 있다. 누구나 다 알듯이 의사들의 사명은 생명을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명을 위하여 돌보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물론 생명을 위해 애써 힘쓰는 의사들의 노고가 결코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면서도 오늘의 낙태현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하다. 의료인 나름대로 애로도 많이 있겠지만, 인간생명의 대량학살에 그 주역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무엇보다도 생명을 존중하는 의료인으로서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한번만이라도 임신여성에게 출산을 권유하고 낙태의 해악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실제는 거리가 멀다. 1991년 형사정책 연구원의 주관으로 실시한 설문을 보자. 첫 낙태 당시 혼인여부별 시술자 행동조사에 의하면 질문 없이 시술하거나(기혼46.7%, 미혼60%), 질문 후 그냥 시술한 것(기혼46.7%, 미혼26.7%)이 대부분이고 출산권유 후에 시술(기혼6.6%, 미혼13.3%)한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1년 교황청 가정위원회가 ‘생명을 위한 봉사’라는 제하로 의사들에게 향하는 호소를 들어보자.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피임약과 낙태의 해로운 영향을 정직하게 알릴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진리를 숨기는 것은 실로 하나의 기만이고 여성이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도록 막는 심각한 태만입니다. 이 지탄받을 신체적, 정신적 위험들에 관해서 그들이 현재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얼마나 침묵했는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외과적 낙태이든 혹은 최근 도입된 화학요법에 의한 낙태이든 이러한 침묵은 어떤 의료절차에서든지 마땅히 따라야 할 동의를 얻기 위한 사전통보 의무를 위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침묵은 말없는 동조이다. 그것은 의술을 담당하는 의료인부터가 대부분 윤리적, 사회적 책임보다는 영리를 앞세우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를 뒷받침하지 않는가. 이러한 동조로 낙태는 더 조장되고 사회는 더욱 생명경시 풍조라는 ‘죽음의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인명을 소홀히 하며 인권을 무시하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 풍토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기에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충실하고 싶은 의료인들의 무거운 짐을 함께 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식 개혁과 정부의 거시적이고 정의로운 정책과 노력이 필요하다.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더없이 존중하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바로 우리 모두의 선서요, 성실하려 애쓰는 인간의 도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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