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가을 어느 날 아버지께서 외출하셨다 돌아오신 후 갑자기 “천주교를 믿어야만 할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 “천주교가 어떤 종교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착한 삶을 살다가 죽어서는 하느님이 계시는 천국에 갈수 있단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내 나이 16세.
당시 우리가 살던 마을에는 천주교란 이름도 들어본 사실이 없을 때였고 다만 종교를 가진 가정이 있다면 불교신자나 대한 예수교회 침례회라고 현판을 걸어놓고 일요일과 수요일에 찬송가를 부르고 예배를 드리는 침례교회 예배당에 몇 명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침례교회도 우리 마을에 들어온 지는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아 15평가량의 예배당을 채우지도 못할 때였으며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을 가리켜 ‘서양 귀신을 믿는다’라고 하며 비판을 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매년 12월25일 성탄 때는 예배를 마친 후 푸짐한 음식상을 차려놓고 마을 사람들을 초대할 때 몰래 예배당엘 한두 번 가 본적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윗대에서 부터 우상숭배를 하고 일 년에 몇 번씩 경문굿을 하며 우상에게 정성을 쏟을 때였다. 조부모들은 물론이며 부모님께서도 ‘예수를 믿는다’라고 하면 깜짝 놀라실 정도로 거부하실 때였음에도 어떻게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가 한 하느님을 믿겠다고 하시며 천주교회에 입교하실 생각을 하셨는지 그때의 어린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천주교회에 입교하시어 하느님을 믿고 지금부터라도 우상숭배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분명한 의지를 보이시기에 나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교리 공부를 하게 되었다.
물론 온 가족이 아버지의 뜻과 함께 하여 천주교 교리문답 이란 책자를 가지고 기도문을 암기하고 3백20종목에 달하는 교리를 암기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신 분은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시지만 이 지면에 소개를 한다면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시리라 생각된다. 그분이 바로 현재룡 비오 회장님이시다.
회장님은 정말 복음 전파에 평생을 바치신 분이시고 참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순명하셨기에 지금도 그분을 생각하면 그때 그분의 크기만 하던 모습이 지금도 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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