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공직자들의 사퇴가 줄을 이었다. 법원과 검찰 수뇌급들의 잇단 사퇴로 술렁이던 법조계, 혼란의 근본이유는 물론 재산공개가 제공했다. 대기업의 총수도 아닌 공직자와 정치인, 그 중에서도 사법부의 치부는 분명 심각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재산공개 파동으로 일반 국민들은 공직 사회가 국민들에게 요구해온 도덕률이 다름 아닌 그 도덕률을 제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준거틀’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법조계는 대폭인사로 일단 안정을 찾은듯 하지만 과연 사람들로부터 ‘돌을 맞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는 여전한 의문으로 남아 걱정스럽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어물쩡하게 넘어간 민자당의 관련 국회의원 처리문제도 사법부 문제와 함께 개혁정부로서는 하나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은 분명할 것 같다. 물론 개혁이라는 고지를 넘어 발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선 말이다.
사실 지방의회 의원들의 재산공개까지를 지켜보면서 일반 소시민들은 놀랄만큼 놀랐다. 정당성이 결여된 부의 축재, 상식을 가지고는 납득하기 어려운 재산 형성과정 등 공직자들과 부의 밀착, 상관관계는 생각만해도 어지럼증을 유발시킨다. 물론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한 많은 사람들의 정직성까지 의심받아서는 곤란하겠지만 공직에 대한 평가절하 현상만큼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공직자들이 지위를 악용, 부당하게 증식한 재산문제는 적법하게, 공정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해결해야만 한다. 국민이 이를 지켜보기 때문만이 아니고 법은 공평하게 적용될 때 법이라는 신성한 이름을 부여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주변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은 법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법의 형평성을 의심하게 하는 그 사건의 내용을 잠시 들어보자. 경기도 광주 근처에 살고 있는 A씨는 며칠 전 검찰의 전화를 받고 출두했다가 그 자리에서 구속 수감되었다. 죄목은 ‘남의 명의를 빌려 불법으로 형질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현지인이 아닌 A씨는 형질을 변경할 수가 없는데도 이를 어기고 남의 명의를 빌어 불법으로 형질을 변경했고 집을 지었다는 것이다. 알아본 결과 이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파렴치범도 아니고 현행범도 아니고 따라서 도주의 염려가 도무지 없는 사람을 그 자리에서 구속했다는 점이다. 그뿐이 아니다. 남의 명의를 빌어 형질을 변경했을지언정 그는 현재 그곳에서 살고 있는 현지인이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사항이 있다. 그는 자기 명의로 된 작은 땅을 근처 성당에 헌납했으며 성당 측은 현재 그곳에다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을 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는 갈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해 가지고 있던 조그만 땅을 그냥 내놓을 만큼 부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 땅은 노인들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됐다.
남의 명의를 불법으로 이용한 것이 법률상 죄에 적용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명의를 불법으로 이용, 그를 통해 엄청난 재산을 증식한 것은 무슨 죄에 해당되는가. 과정상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는 현재 현지에서 거주하는 주민이라고 한다. 재산을 증식하기 위해 명의를 변경한 것이 아니라 그곳의 현지인으로 살기위해 잠시 명의를 빌렸을 뿐이라고 한다. 실제로 살기위해 잠시 명의를 빌린 사실과 재산 증식을 목적으로 명의를 빌린 것과는 법에 문외한인 사람이 들어봐도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는 공직자들의 불법적인 재산증식이 거의 모두 땅과 관련되어 있다. 불법이 아니고는 매입할 수 없는 땅을 곳곳에 가지고 있고 모두 투기 혐의가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그래도 그들에겐 어느 날 갑자기 구속이라는 굴레가 씌워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우리의 현행 법 질서는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실명제나 세제 개혁으로 소시민들은 오히려 부담을 받고있다. 공직자들의 재산공개는 상대적 부족감과 상실감만을 더해주고 있다. 확실하게 드러난 공직자들의 땅 투기는 어정쩡한 상태로 넘어가고 소박하게 살고자하는 소시민들의 생존권은 무참하게 박탈해 버리는 우리의 법 제도, 이거 문제라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은 불쌍한 건 ‘공직’이라는 지위가 없는 소시민들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들게 한다. 공직은 이름 그대로 사람들을 위한 직업이다. 그들이 공의회 정신을 망각했을 때 더 엄중하고 더 무거운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하는 것도 공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당사자를 불러 사실유무를 따져보는 절차가 필요하다. 사실을 따져 법에 저촉된다면 구속사실을 통보하고 이를 수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무조건 알아볼 일 있다고 출두시킨 후 그 자리에서 사람을 구속하는 우리의 현실은 암흑시대를 방불케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무조건 잡아넣어 ‘공밥’ 먹이고 생업을 막는 행위는 국가적으로도 낭비요 개인적으로도 손해다. 현재 우리는 절약을 제2의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있다. 행정의 작은 부분까지도 헛된 씀씀이를 막아야 할 절박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기도 하다. 도대체 지금이 3공인가 5공인가 아니면 6공인가. 도무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문민행정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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