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3살에 영세하여 그 다음해에 결혼했다. 자상한 남편과 별 어려움 없이 잘 커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의무적으로 주일미사 참례했다. 3년간 냉담과 더불어 신앙이 식어가는 반면에 세속을 더욱 사랑하며 나의 안락함과 편의적 생활에 젖어 안이한 모습으로만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배에 혹이 생겨 파티마 병원에서 수술하고 그 혹은 원자력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한 결과 육종 암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암환자 만명에 한 명 생길까 말까하는 병이라 했다. 어느 한 부위에 암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핏줄을 타고 발병하기 때문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암이 퍼지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엄청난 결과 앞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앞으로 많이 살아야 3개월이라는 의사선생님 말씀에 제일 먼저 머리에 스치는 것은 주님께 대한 아무런 공로도 없는데 죽은뒤 내 영혼은 어찌 될 것인가 하는 무서운 공포가 온몸을 감싸여왔다.
실의에 빠져있는 저에게 친정어머니께서는 꼭 한가지 살 길은 지금 이순간부터 우리 모녀가 살려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주님께 매달리면 주님은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님과 성모님께 지난날에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하여 용서를 청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정말 내가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마음 한가운데 도사리고 있었다.
항암제 주사를 맞고 난 후유증은 엄청났다.
머리는 다 빠지고 손발은 저리고 뼈마디는 힘이 없어지고 구토와 불면증에 입안은 헐어 피가 엉켜왔고 온몸이 조여드는 고통이 왔다.
절망과 좌절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최악의 상태에서 절실한 심정으로 주님께 매달렸다.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육신의 고통은 서러움과 함께 미래에 대한 불확실과 두려움에서 더욱 죄여왔다. 병원에서는 항암제를 3개월 맞아봐야 회복될 가능성을 알 수 있다 했다.
우리 집에서 성당까지 15분 거리지만 어머니 부축을 받으며 아픈 몸을 이끌고 몇 번이나 쉬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차를 타면 쉽게 갈 수 있지만 보속하는 마음으로 주님께서 십자가 지고 가시는 길을 생각하면서 눈물로 눈물로 용서 청하며 걸었다. 감실 앞에서 쉴 새 없이 간구하고 성모님께 도움을 청했다. 4개월째 접어들어서는 병원에 입원 3개월간 항암제 투여결과를 기다렸다.
입원한지 3일째 되는 날 병원 주치의가 들어오면서 기쁜 얼굴로 “김혜숙씨 우리 희망을 가집시다. 채혈 검사를 5번 해도 암균이 검출되지 않습니다. 우리 산부인과에서는 온통 들뜬 분위기에 있습니다. 우리 잘해 봅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와 어머니는 병원 내에 있는 성당에서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2번째 수술한 결과 1백% 완치 되었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이셨다. 나를 담당했던 선생님은 천운을 타고 났다면서 내 병에 대하여 논문을 쓰신다고 하셨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신뢰심을 가지고 온전히 나의 모든 것을 맡길 때 꼭 들어주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 계기로 내 잠자는 영혼을 눈뜨게 해 주시고 이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의 참다운 자녀가 되게 하시려는 것임을 알고 신앙인답게 안간힘을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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