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계획 사업은 매우 친절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가면 뒤에는 섬뜩한 면이 있다. 1914년 미국의 마가렛 생거는 전국 산아제한연맹을 결성, ‘산아제한(Birth control)’이란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후에 1942년 그 명칭이 가족계획연맹으로 바뀐다. ‘가족계획(Planned Parenthood)’. 이 말이 오늘날 인공피임과 불임수술, 그리고 낙태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적을 것이다. 과거, 가족계획 상담원으로 활동하던 한 교우를 볼 때마다 서로가 마음이 아팠었는데, 얼마 전 오랜만에 그 교우를 만났다. 환한 얼굴로 “저 그 일 그만두었어요.” 인공피임은 물론이고 낙태까지도 주선하던 그 일을 청산했다는 소식을 먼저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었다.
가족계획사업은 왜 장애자들을 공격하는데 앞장서왔을까? 1924년에 마가렛 생거는 장애자는 죽도록 제쳐놓아져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어떠한 장애자도 양육되지 않도록 법이 제정 되어야 한다” 왜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되었을까? 미국의 막스 신부님은 그녀의 일의 핵심은 ‘우생학’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그녀에 의하여 설립된 산아제한 운동은 대부분의 우생학자들에게서 환영을 받았었다. 우생학이란 쉽게 표현하자면, 인류 안에 열등한 인종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수단들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믿기 어려운 것은 생거 여사가 1922년 “산아제한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인종청소를 지향해야 한다”고 쓴 점이다. 그때 그녀는 무엇을 의미하고자 한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산아제한이 근원적으로 우생학 실행의 동의어였다는 의미 있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마가렛 생거와 그녀의 동료들의 슬로건은 그 말의 본뜻을 명료하게 한다. 1919년 5월 마가렛 생거 여사는 “우성에서 많은 아이를, 열성에서 적은 아이를, 이것이 산아제한의 참 목적이다”고 했고, 1929년 10월에 비슷한 내용을 표현하였다. “지성인들 사이에서 보다 높은 출산율을 얻기 위한 해답은 정부에게 건강치 못한 이와 정신박약아의 짐을 당신의 어깨로부터 먼저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불임화가 그 대답이다” 그녀는 지독하리만치 장애자들을 돕는 것에 반대하였다. 그리고 장애자들은 사회를 좀먹는 자들이라고 생각하였다. 1923년 10월에는 “우리 문명사회의 표준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쓰여야 할 기금이 결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전용되고 있다”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우리는 1930년대에, 미국 산아제한 옹호자들과 아돌프 히틀러의 인종차별주의자들 사이에 광범위한 공동협력이 있었다는 것에 주위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생학(優生學)이 무엇인지 좀 더 살펴보자. 우생학이란 말은 찰스 다윈(1809~1882)의 사촌인 프란시스 골든(1822~1911)이 처음으로 사용했다. 우생학이란 그리스어 ‘ou-genes’(잘 태어나다)에서 유래하는데, 유전과 환경의 영향에 의해 미래의 인간세대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소질의 개량을 꾀하는 학문이다. 극단적인 형태의 우생학에 의하면 우수한 사람한테 출산을 의무화시키고, 가난한 사람에겐 피임을, 부적격자에게는 불임시술과 안락사를 의무화한다. 온건한 형태의 우생학은 강제적 수단을 쓰지 않고 정신적 신체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타고난 사람들의 수를 줄여가는 방법을 연구한다. 과거 우생학은 실제로 피임, 불임수술, 낙태, 안락사를 돕는 촉진제가 되어왔고 현재도 그러하다. 불임화함으로써 혹은 그들을 죽임으로써 장애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은 불행하게도 과거지사가 아니다. 가족계획사업은 아직도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구성되어 있다. 지난 20년 동안 모든 낙태 논쟁들과 낙태 자금 조달에서 소위 ‘낙태적용 사유’는 가족계획 사업가들이 그들의 주장을 펴는 쐐기였었다. 그 세 가지 적요사유는 다음과 같다. 즉 임신이 산모의 생명을 위협할 경우, 강간에 의한 임신인 경우, 그리고 기형이나 혹은 유전적 질병의 어린이인 경우이다. 맨 마지막의 우생학적 임신의 경우, 신체적 정신적 장애자는 즉 기형아는 살 가치가 없다는 냉혹한 결정을 하는 것이다. 아이가 자궁에 없다고 속이려는 것은 아니다. 낙태옹호자들은 그 아이를 인정하면서도 다만 장애나 질병 때문에 죽이려고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자녀들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의 개량을 위하여 적절한 합법적 수단을 쓸 권리를 인정한다. 그리고 자연적 가족계획법을 지지해 왔다.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우생학과 비자연적이고 반생명적인 가족계획을 반대해왔다.
반대의 근본 이유는 그들이 인간의 초자연적인 운명과 인간의 전 삶의 의미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산모의 건강과 생명이 소중하다면 태아의 생명 또한 소중하고,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이라고 다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장애자로 태어났다고 다 세상을 좀먹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물론 누군가 장애자로 태어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형출산이 안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태아가 기형이라고 해서 낙태시키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비록 대다수의 의견이 그러하다 하더라도 진리에 위배되는 것이다. 태아가 기형이라도 엄연히 인간이고 존중받아 마땅한 존엄성과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생명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누가 장애자는 불행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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