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마을 공소는 부회장님께서 공소일을 맡아 하시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그곳 공소 건물을 교구청에서 도움을 받아 건립하고 많은 예비신자를 교육시켜 세례를 받도록 하셨고 또 그곳에도 회장님 한 분이 임명되었을 때까지는 일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께서 전교하신 사람들만 해도 수백명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 아버지께서는 교구청에서까지 신임받는 회장님으로 알려지고 우리 공소에서 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공소에서도 존경받고 있었다. 나는 8남매 중 장남이며 형제중 4명은 유아 영세를 하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조만과 기도와 주일 첨례를 한번 궐하면 마음이 불안하여 어쩔줄 몰라 했으며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 온지도 7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내게는 피하지 못할 또 다른 과정이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건강한 남자이면 누구나 다 필해야 하는 병역 의무였다. 따라서 나는 1964년 9월14일 나라의 부름을 받고 논산 제2훈련소 제80기생으로 입소하여 제25연대 10중대 2소대원으로 훈련에 임하게 되어 하루하루 고된 훈련을 하면서도 주일날이면 마음속으로 주일첨례 대송을 하였다.
훈련이 끝나갈 때 쯤 그동안 배운 사격술 평가를 하는 날이 되었다. 전날 저녁 점호시간에 우리소대 내무반장이 우리에게 말한 것들이 영 마음에 걸렸다. 너희들 가운데 만약 사격술에 불합격하는 자는 살아서 고향에 갈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물론 내무반장의 말씀은 농담이며 잘하라는 충고였지만 나는 만약 불합격을 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몹시 떨리는 마음으로 총기 진열대 앞에 다가서면서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며 묵상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 서 있던 동료 훈병 한사람이 역시 병기 진열대 앞에서 성호를 그으면서 기도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반가운 마음으로 그의 손을 잡았고 우리 둘은 서로 마주보고 좋아하였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내려질 것이라는 생각을 동시에 한 것이 같았다.
나는 사격장에서 떨리는 몸으로 사격에 임하여 표적을 겨누어 정조준 하는 순간 앞에서 탕 하는 소리에 놀라 그만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주여 이일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실탄이 표적 밖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실탄 9발중 8발은 잘 맞추었으나 도망간 1발 때문에 불합격이었다. 이젠 죽었구나 하고 나는 사색이 다 되어 벌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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