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의 젊은 시절의 기도는 이러하였다. “주여, 나에게 세상을 개혁할 힘을 주소서.” 그가 중년이 되어 단 한사람의 영혼도 고치지 못한 채 반생이 흘렀음을 깨닫자 그의 기도는 이렇게 바뀌었다. “주여 나와 접촉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킬 은총을 주소서 그저 가족과 친지들만 개심시켜도 만족하겠나이다” 노인이 되어 죽을 날이 가까워진 그는 지금까지 자기의 기도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깨닫게 되었다. 처음부터 이런 기도를 바쳤다면 일생을 허비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기도는 이렇게 바뀌었다. “주여 나 자신을 고칠 은총을 주소서!”
어떤 책에서 읽은 귀절이다. 이를 읽으면서 여기에 나를 빗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떤 기도로 살아가고 있으며 또 무엇을 바라고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자유, 평화, 사랑, 명예, 부, 권력, 아니면 그럴듯하게 포장된,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복? 아무래도 가장 끝에 쓴 말이 제일 걸리적 거린다. 본질은 잃은 채 오로지 그럴듯하게 포장이 잘 된 내용없는 상품을 좋은 것으로 착각하며 이를 추구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쯤 생각하니 갑자기 정신이 바짝 든다. 내가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행위가 진정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의 그럴듯한 포장된 말로 혹 학생들을 현혹(?)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생명없는 그저 단순한 지식만을 전달하는 시간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괴테의 파우스트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이것이 지혜의 마지막 섭리이니 매일 새로이 정복하는 자, 오직 그만이 생명과 자유를 얻는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생명 없는 지식전달의 강의시간이 아닌, 진정한 학문을 위한, 인간을 위한, 생명과 자유를 얻기 위한 강의가 되려면 결국 나를 매일 새로이 정복하여 매일매일이 새로운 탄생의 날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매일 똑같은 일과, 아무리 걸어가도 제자리인 것만 같은 우리의 삶 앞에서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한번쯤 정리해 보는 것은 생활에 젖어 있는 우리를 흔들어 깨워주는 일이 될 것이다. 삶의 권태를 느낄 때, 자기가 하는 일이 지겨워질 때,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을 때, 나 자신의 껍데기를 한 꺼풀 벗기어 나를 변화시키면 그간 안보였던 것이 보이게 될 터이고, 또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됨은 당연하겠고 결국 세상은 좀 더 살맛나게 되지 않을까?
이쯤 되고 보니 어느덧 나의 기도는 어떤 사람이 바친 기도의 표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주여 나 자신을 개혁할 용기를 주소서? 나 자신을 정복할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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