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죄악 피해가라고 이 몸 묶어주시니 나는 행복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아는 것 없지만 당신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주시니 나는 행복합니다. 느낄 수가 있고 들을 수가 있고 생각할 수가 있으니 나는 행복합니다. 내게 남은 이 세 가지를 천상을 위해서 쓸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합니다”
이 시를 대하는 순간 불쑥 눈물부터 나왔다. 32세, 배영희 엘리사벳. 그녀의 몸은 자신의 표현대로 꽁꽁 묶여 있다. 그녀를 꼼짝 못하도록 묶고 있는 끈은 밧줄도 아니고 쇠줄도 아니다. 바로 ‘마비’라는 증상이다. 전신마비 환자인 그녀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녀의 맑은 영혼을 투영시키는 듯한 이 시는 분명 그녀의 작품이다. 그녀가 입으로 노래한 시다.
배영희씨는 현재 가평 꽃동네에서 살고 있는 꽃동네 식구다. 그곳에 살고 있는 식구들마다 가슴속 깊이 묻고 있는 사연이 기구하듯 배영희씨의 이야기 역시 손수건이 필요하다. 듣기조차 민망한 그녀의 사연은 대개 이러하다.
찢어지게 가난하긴 했지만 야간학교를 다닐 만큼 향학열을 불태우던 그녀는 어느 날 지독한 영양실조로 길 위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대책 없이 쓰러진 그녀는 척추를 다쳤고 20살의 꿈도 채 피워보기도 전에 그녀의 삶은 깊은 침잠의 세계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의 숲을 지나 6년 전 그녀는 꽃동네의 식구가 되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인간이 그 존재만으로도 존중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막막함으로부터 그녀는 깨어났고 그녀는 마음속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사랑을 노래로 표현했다. 살아있는 감성과 열린 귀, 그리고 무한하게 열린 상상의 나래로 그녀는 그 사랑을 조심스럽게 노래했다. 그녀가 노래하는 시는 단순했지만 거짓이 없었다. 아름다운 표현도 세련된 문체도 선택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진실이 몽땅 담겨있었다.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등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엔 수많은 배영희씨가 있다. 웃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을 전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우리는 흔히 그들을 가여워하지만 오히려 그들은 우리의 황폐한 영혼을 불쌍해할는지 모른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놓치고 있는 행복을 그들은 안타까워 할지 모른다.
남은 탤런트를 모두 바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배영희씨를 보면서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하느님을 노래하고 있는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멀쩡한 두 팔로, 굳건한 두 다리로,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자랑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24일로 우리 교회는 전교주일을 맞는다. 전교주일의 의미를 단순하게 풀이한다면 우리 모두가 자기가 믿는 하느님의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 하느님의 사랑을 다른 이와 나누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차피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그분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교란 하느님의 사랑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을 잠깐 돌아보자. 우리의 얼굴을 거울에 한번 비추어 보자.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의 모습 속에 지니고 있는가. 우리 안에 하느님의 자리를 만들어 드리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은 결코 ‘아니’라는 대답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교회의 선교사명은 지상 최대의 과제다. 교회의 사명은 곧 우리 신자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교는 우리 모든 신자들의 중대하고도 막중한 사명이자 책임이 아닐 수 없다. 그 사명을 저버린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버려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의 모습 안에 하느님을 보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신자라는 허울을 벗어야만 한다. 내 안의 하느님을 내가 발견하지 못하는데 다른 이가 발견할리가 없다. 내 안에 주님을 모시지 못하고 사는데 그 주님을 다른 이에게 전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둔화되고 있는 신자 증가율’과 ‘냉담자 증가’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4명 중 한 명이 냉담 중에 있으며 새 신자 냉담률이 자꾸만 높아간다는 진단도 우리를 놀라게 한다.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전교가 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내가 신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온몸이 꽁꽁 묶여있으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아름다운 시어로 노래하는 배영희씨가 이번 전교주일에 우리를 자꾸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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