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은 끝났고 불합격자는 그날 일과가 끝날때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기합을 받고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분명히 나도 같은 대열에서 기합을 받아야 했는데 내무반장이 나만 눈감아 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동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그때 당시에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생각하고 감사 드렸다. 물론 아침에 나와 같이 기도하던 그 장병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무사히 합격한것 같았다.
그럭저럭 훈련을 모두 마치고 나는 제38사단으로 배치받아 수색중대에 근무할 때 사단장님께서 열심한 천주교 신자인 덕분에 시내 성당에서 미사 참례를 한 번 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군생활이 시작되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 생각을 게을리 하기 시작 하였고 또 1년이 지나서는 제1백15연대로 전출 명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연대장님의 특별 명령으로 연대 PX 관리병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시내 외출도 자주 할 수 있었으므로 주일날도 성당엘 가고 싶으면 충분히 갈 수 있었음에도 성당은 물론 기도 생활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3년간 군 복무를 무사히 끝내고 1967년 3월17일자로 제대를 하고 귀향하게 되었다. 군 복무 기간 동안 나만이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였다는 죄책감을 안고 돌아와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 마을 신자들도 상당수가 냉담을 하였으며 그렇게도 열심으로 전교 사업과 신자 관리에 동분서주 하시던 아버지께서도 겨우 봄 가을 판공성사 정도로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끝내는 냉담을 하시기에 이르렀다. 누구보다 열심이시던 아버지께서 왜 냉담을 하시게 되었는지 알아본 결과 몇 분의 신부님과 의사충돌로 인하여 냉담을 하시게 된 것이었다. 내가 처음 입교하여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을때만 해도 신부님은 예수님과 일거 일동이 다를바 없다고 생각했듯이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믿고 바랐던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주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인성을 취하신 참 하느님이시고 참 사람이시지만 신부님은 인성만을 취한 사람임에도 예수님과 꼭 같으시길 원했던 탓이었다. 하지만 신부님은 한 인간이심에 매사에 판단을 잘못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죄도 지을 수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과 꼭 같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계시를 따라 믿어야 하고 자기의 신앙은 자기가 지켜야만 되는 것이지 성직자나 수도자 또는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냉담을 하고 함부로 신앙을 버리거나 결정해서는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공소에 신자 수가 몇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 년도인지 확실히 기억은 없지만 공소를 팔아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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