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빠른 음악을 선호하는 경향은 공통적이다.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인 가곡(歌曲)의 예를 들더라도 그러하다. 원래 이 가곡은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만대엽은 영조 이전에, 중대엽은 조선 말엽에 각각 없어져서 지금 남아 있는 가곡은 삭대엽 뿐이며 그 삭대엽이 변형 발전되어 지금의 가곡 한바탕이 구성된 것이다.
만대엽과 중대엽이 없어지게 된 이유는 옛 문헌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 속도 때문이다. 즉 너무 속도가 느려 사람들이 싫어하였기 때문에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연주되고 있는 삭대엽이라도 곡도 현대인들의 감각에 의한다면 그리 빠르지 않고 오히려 느리고 유장한 감이 더하다.)
또 궁중의 음악연주자들을 교육하는 내용의 기록들을 들추어 보더라도 연주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이유로 상관으로부터 훈계를 받는 내용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같은 음악을 연주하는데 예전보다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하여 세태를 한탄하는 목소리도 옛 문헌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요즈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빠른 것을 좋아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특징인가 아니면 민족성 때문인가 등등 여러 의문을 가져볼 수 있지만 이는 아무래도 인간의 마음을 빠르게 치닫도록 하는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예전의 10년이 지금의 1년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회의 변화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정보화 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더욱 그러하다. 숨돌릴 틈조차 없이 몰아대는 변화의 물결을 수용하여야 하고, 수용하지 못하면 곧 퇴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급히 서둘러 하려다보면 반드시 구멍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 구멍을 메꾸려면 그 배 이상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 급하다 보니 욕심껏 일을 많이 벌려 놓아 뒷수습을 못하게 되는 것을….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 나에게는 매우 절실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요즘 생활의 지표로 삼고 있는 말이 있다. 불파만지파참 즉 ‘느린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중도에 그만둘 것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그것이다.
자꾸 급해지려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속도 빠른 음악보다는 느리고 유장한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특효약이다. 이 좋은 계절에 우리의 시조에 곡을 붙인 가곡 ‘초수대엽’이나 기악곡 ‘영산회상’, ‘수제천’ 등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 한 자락을 저 단풍 물든 산 한가운데에 펼쳐놓는 것은 어떨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