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김두호(알로이시오)몬시뇰 신부님!
병명과 상황으로 보아 하느님께서 데려가실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이렇게 덜커덩 떠나시니 꿈처럼 아련할 뿐입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로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 저희는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인간 칠십이 고을에 드물다는 옛말은 사라진지 오래며, 회갑은 생략하고 칠순잔치를 거창하게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는 이때, 그 흔한 칠순도 몇 년 앞둔채 홀홀히 떠나셔야만 했습니까?
아쉽고 원통한 마음, 서럽고 괴로운 심정이 납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르며, 인간적인 오열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쥐어보는 혹독한 고통에 우리는 떨고 있습니다.
존경하올 신부님!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신앙의 정신으로 이 처절한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은 정말 봉헌된 자의 삶을 살다가셨기에 우리는 항상 존경하며 따랐답니다. 언제보아도 귀공자 같은 호감 가는 모습이었고, 서두르는 일없이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소리없이 일하셨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인내로 경청하면서 정확한 판단과 지침을 내려 주셨고, 괴롭고 언짢은 일에는 침묵으로 삭이셨습니다.
교구 설정 당시부터 다양한 중책을 고루 역임하시며 차질 없는 실행으로 사제의 삶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자신에게는 냉엄하면서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으며, 잔잔한 미소와 함께 조리있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각 본당의 역사를 거울에 비치듯 소상히 말씀해 주실 때는 흘러간 역사가 현실에 살아 꿈틀거리는 생생한 감흥을 받으면서 기쁘게 듣곤 하였습니다.
며칠전 문안 인사차 뵈었을 때도, 엄습해 오는 통증과 꼽혀있는 산소관의 불편을 무릅쓰고 지극한 관심으로 따뜻한 말씀을 들려주실 때 가슴이 찡하는 감동을 전해 받으면서, 예나 다름없는 품위를 보여 주셨습니다.
존경하는 신부님!
신부님의 일생은 올바른 사제의 삶과 모범을 진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추억으로 사라지는 미래가 아니라, 그 희생, 봉사, 사랑의 고귀한 삶을 이어받아 우리들 가슴속에 더욱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승화 될 것입니다. 사제이기에 누렸던 영광은 찰나에 사라지고 사제이기에 겪은 인간적인 고통은 얼마나 컸었습니까?
일제 강점기에 어려웠던 신학교 생활과, 6·25동란 중에 서품되어 전국이 풍비박산이 되고, 의식주의 극한 상황에서도 양떼를 위한 초인적인 목자로 출발하셨습니다. 반찬 몇 가지만 상 위에 올라도 ‘오나시스 밥상이야 !’ ‘오나시스 밥상이야 !’하시면서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청춘을 불사르며 동지섣달 긴긴밤에 북풍한설 휘몰아 칠 때, 냉장고 같은 차가운 시간을 보낸 것은 얼마였으며 병고에 시달리며 물 한 모금 마시기 위해 까만 어둠을 응시하며 지새웠던 밤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순수한 인간적인 욕구가 태풍으로 엄습해 올 때 살얼음을 걷는 듯한 아찔한 순간들은 또한 얼마나 많았습니까?
신부님!
속죄의 번제물처럼 타오른 당신의 향기가 누리에 진동하고 있습니다.
아 ! 아 ! 아련히 감지되던 천상의 개선 행진곡이 점점 크게, 점점 빨리 들려옵니다. 우뢰 같은 천사들의 박수소리도 들려옵니다. 기화요초 만발하고 휘황찬란한 천국의 광채가 주위를 감싸줍니다. 다양한 향기가 천지에 진동하고, 무수한 보석으로 꾸며진 주단위로 수호천사가 신부님을 모시고 사뿐사뿐 입궐합니다.
주여 ! 언약하신대로 그에게 최고의 복락으로 갚아 주소서. 만년이 일초같은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으로 영복을 누리소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